임금 떼먹어도 벌금형 다수…체불액보다 적어 버티기 일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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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법인택시기사로 일하는 60대 A씨는 900만원에 가까운 임금을 떼인 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청 조사를 거쳐 사업주가 검찰에 송치까지 됐지만, 무죄를 주장하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사업주가 버티고 버티면 그동안 노동자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매년 1조원대 규모로 발생하는 임금 체불이 노동 약자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여전히 ‘늦게 주면 어때’, ‘버티면 그만이지’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를 보다 강화하고, 실효성 있는 청산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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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임금체불 신고액은 9752억원으로 나타났다. 임금을 떼인 근로자는 15만5536명으로, 1인당 600여만 원꼴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은 8월분까지 포함하면 1조원을 넘어섰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간 임금체불액은 2020년 1조5830억원, 2021년 1조3505억원, 지난해 1조3472억원 등 매년 1조원을 상회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체불액은 82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7% 급증했다. 덩달아 피해자들이 체불액을 돌려받지 못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올해 1~7월 미청산율은 20.4%로, 임금을 떼인 노동자 5명 중 1명은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1년(16.3%)이나 2022년(15.7%) 등 최근 미청산율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사업주들이 버티는 이유의 하나로 ‘약한 형벌’이 꼽힌다. 중앙일보가 최근 1년간 임금체불에 따른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판결문 127개를 분석한 결과, 과반인 51.2%(65건)가 벌금형에 그쳤다.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20%에 못 미쳤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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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도 체불액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사업주는 1000만원이 넘는 월급을 제때 지급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졌지만, 체불액의 10%도 안 되는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고용부에 따르면 벌금형에 처해지더라도 체불액 대비 벌금액이 30% 미만 수준인 경우가 77.6%에 달했다.

임금체불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 대부분이 노동 취약계층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임금체불의 74%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임금 체불을 ‘반사회적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추석 전까지 단속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상습·고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사업장 120여개소를 대상으로 기획감독을 실시하고, 전국 48개 지방관서별로 구성된 체불청산기동반을 중심으로 신속한 청산을 유도한다. 체불 근로자 생계비 융자를 1.5%에서 1.0%로 인하하고, 간이 대지급금 처리 기간을 14일에서 7일로 한시 단축하는 등 생계 지원도 병행한다.

매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인 만큼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노무법인 노동과인권 박성우 노무사는 “기본적으로 형량이 너무 낮고, 뒤늦게라도 임금을 지급하면 선고유예로 끝나기 일쑤이다 보니 ‘제때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도 부족하다”며 “재직자 임금 체불에 대한 지연이자제를 도입해 늦게 지급하는 만큼 더 부담하도록 만들고, 임금 체불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는 등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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