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0발을 탑재해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소위 '전술핵공격잠수함'을 처음으로 진수했다고 밝혔다. 다만 군은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평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북한이 해군력 과시를 위해 잠수함 개발 성과를 과장한 것이란지적이 나온다.
4년 만의 잠수함 공개
조선중앙통신은 8일 "우리 당의 혁명 위업에 무한히 충직한 영웅적인 군수노동계급과 과학자, 기술자들은 우리 식의 전술핵공격잠수함을 건조해 창건 75돌을 맞는 어머니 조국에 선물로 드렸다"고 보도했다. 이어 "첫 수중핵공격함선의 장엄한 탄생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 무력 강화의 새로운 장의 서막을 알렸다"며 "첫 전술핵공격잠수함 제841호가 ‘김군옥 영웅호’로 명명됐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열린 김군옥 영웅함 진수식에는 김정은과 함께 이병철 노동당 비서, 박정천 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그리고 최근 공개적으로 김정은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던 김덕훈 내각 총리 등이 참석했다. 최선희 외무상, 현송월 당 선전부 부부장도 눈에 띄었다.
북한의 신형 잠수함 진수는 2019년 7월 김정은이 신형 잠수함 건조 현장을 시찰한 뒤 약 4년만이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기존의 1800t급인 로미오급 잠수함을 개량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잠수함의 함교 부분에는 10개 가량의 SLBM 수직 발사관이 보인다. SLBM 뿐 아니라 핵무인수중공격정(핵 어뢰) '해일' 장착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군은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외형 분석 결과 미사일을 탑재하기 위해 함교 등 일부 외형과 크기를 증가시킨 것으로 보인다"며 "기만하거나 과장하기 위한 징후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군은 연합 감시 자산을 이용하여 북한의 잠수함 진수 활동을 사전에 한ㆍ미 공조 하에 추적해 왔다"며 "유리한 것을 공개하고 불리한 것은 숨겼을 텐데, 불리한 것을 분석했을 때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군이 '정상운용'을 언급한 것으로 미뤄 정상적인 정숙 주행 등조차 힘들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기이하고 무리한 설계"
전문가들도 "설계 자체가 무리수"라고 입을 모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설계 등 측면에서 실효성도 없는 희한한 잠수함"이라며 "10개 발사관에서 나가는 SLBM을 그 작은 잠수함에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실전용으로 충분히 테스트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군사매체 '워존'은 이날 김군옥 영웅호의 개조된 외관을 "기괴하다(bizarre)"고 표현하며 '프랑켄서브(Frankensub)'로 지칭했다. 북한의 무리한 잠수함 개조를 과학 실험에 의해 인체가 짜깁기된 소설 속 등장인물 프랑켄슈타인에 빗댄 것이다.
잠수함의 생명인 은밀성과 정숙성도 떨어질 거란 지적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체 직경이 매우 작은 로미오급을 무리하게 탄도미사일 발사함으로 개조하면서 함교 후방에 미사일 데크를 장착하는 기이한 설계 방식을 택했다"며 "이로 인해 수중에서의 정숙성이 매우 취약할 것으로 보이며, 미사일탑재부가 발사 압력을 견딜 만큼 충분한 강성을 가졌는지도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또한 "단순히 발사관을 함교 옆에 가져다 놓은 구조로 발사 압력을 견딜 내구도가 있을지, 수중 정숙 주행이 가능할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투트랙' 수중 전력 증강 구상
북한은 이날 "기존의 중형잠수함들도 전술핵을 탑재하는 공격형잠수함들로 개조하겠다"며 동시에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더 큰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궁극적 목표로 두면서 기존 중형 잠수함을 공격형으로 바꿔나가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겠다는 '투 트랙' 구상이다.
이와 관련,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추진잠수함 개발까지 기술적 난관과 막대한 비용 및 시간을 고려했을 때, 핵추진잠수함 완성 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복안"이라고 설명했다.
최일 잠수함연구소 소장은 "현재 보유한 약 20척의 로미오급 잠수함 일부를 동일한 방법으로 개조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절대 열세' 해군력 만회 의지
이날 진수식에 참석한 김정은은 "지난 수십년간 공화국에 대한 침략의 상징물로 인배겨있던 핵공격잠수함이라는 수단이 이제는 파렴치한 원수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위혁적인 우리의 힘을 상징하게 됐다"며 "해군의 핵무장화는 더는 미룰수도, 늦출 수도 없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지난달 27일 해군절을 맞아 딸 김주애와 해군사령부를 방문하는 등 최근 연일 해군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북한이 잠수함을 공개한 시점에 주목한다. 김정은은 9일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 민간무력열병식 직후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무기 거래 등을 논의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를 앞두고 북한이 이날 첫 전술핵공격잠수함 건조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린 것 또한 해군력이 상당 수준까지 강화했다고 강조하기 위한 전술로 읽힌다. 북한의 해군력은 그간 절대적 열세로 평가돼 왔기 때문이다. 정보당국이 최근 러시아가 북한에 합동 해상 훈련을 제안했다고 파악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해군 역시 타국과 연합훈련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한 의도로도 보인다.
양 위원은 "북한이 러시아를 향해 잠수함을 보여주며 '우리도 충분히 훈련에 참가할 수 있다'고 어필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력 과시 '조급증'
실제 전문가들은 이번에 함상에 발사관 10개를 설치한 것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당초 북한의 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중형 잠수함을 전술핵미사일 발사용으로 개조할 경우 3~4개 정도의 발사관을 장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는 김정은의 조바심을 방증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올해 들어 두 차례 연속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했고, 곧바로 10월 재발사를 예고할 정도로 국방력 입증에 다급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도 북한은 전략순항미사일인 '화살-2형'을 쐈다고 주장했지만 군은 "북한의 발표가 과장되고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김정은이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직접 제시한 5대 국방 과업 중 하나인 핵추진잠수함은 아직 진전 소식이 전혀 없다. 이번에 김군옥 영웅함을 공개하며 김정은이 다음 수순으로 핵추진잠수함을 또 예고한 것도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더딘 개발 속도로 인한 조급함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북ㆍ러 정상회담에서 북한산 무기 거래가 논의된다면 북한이 러시아 측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 등 미진한 분야에서의 기술 이전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김정은이 직접 이를 언급한 것이라 주목된다.
북ㆍ러 협력 확장 우려
이런 상황에서 북ㆍ러 협력이 단순히 재래식 무기와 식량을 바꾸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 석좌는 6일(현지시간) 게재한 논평에서 "북ㆍ러 협력이 위성, 핵추진 잠수함, 탄도미사일 등 첨단 기술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튿날 벨기에에서 열린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선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게 되면 한국 입장에선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싶은 건 뭐든 줄 수 있다는 의미 아니냐"며 북ㆍ러 무기거래 시 한국의 대(對)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한편 김정은은 오는 11일 동방경제포럼(EEF)이 열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전망이다. 이날 김정은은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해 리무진으로 갈아탄 뒤 EEF가 열리는 극동연방대학교로 이동하는 방안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