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의 한 관절·척추 전문병원은 폐쇄회로(CC)TV 시공 업체를 불러 수술실 3곳에 200만 화소의 고화질 CCTV를 달았다. 수술실 밖 보호자가 CCTV 작동 여부를 알 수 있도록 ‘CCTV 녹화 중’ ‘녹화 대기 중’을 표시하는 LED 알림판도 설치했다. 서울 강남의 한 여성병원도 두 달 전 CCTV 설치를 끝냈다. 이 병원 관계자는 “CCTV가 있다는 점이 환자, 보호자에게 신뢰를 주고 타 의료기관과의 경쟁력 부분에서 우위에 서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대리수술 등 불법 행위를 막고자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 시행을 20일 앞두고 의료계 반발이 여전한 가운데 한편에선 막바지 설치를 서두르는 분위기다. CCTV 시공 관련 한 업체 관계자는 “CCTV 설치 의무화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관련 문의가 많다”라며 “정형외과, 성형외과, 치과 등 개인 병원 위주로 요청이 들어와 이틀에 1개꼴로 설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의료원 안성병원에 설치된 CCTV. 사진 경기도 제공.
한 병원 관계자는 “(대한)의사협회에선 헌법소원을 냈다고 하지만 이미 일부 병원에서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료기관’이라고 역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곳도 많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히려 의료과실 등에서 병원이 유리하게 갈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세계에 전례 없는 악법이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도 여전히 있다. 대한병원협회와 의협은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5일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 헌법 소원 심판 청구서를 냈다. 수술실 CCTV가 환자와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고 의사의 방어 진료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CCTV 설치가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전공의 기피를 더 유발해 필수의료 붕괴 문제도 심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헌법 소원과 상관없이 법은 시행된다”라며 “차질 없는 시행을 위해 의료기관과 지자체에 가이드라인을 안내하고 준비를 독려하고 있다. 시행 전에 기관별로 현황을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설치 비용이 일부 지원되지만 유지 관리비나 정보 유출 관련 보안 책임은 병원이 감당해야 하는 만큼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한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은 2014년 수술실 생일파티와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의료실 내 성범죄 등의 사건이 불거지면서 필요성이 제기됐다. 2015년 관련 법안이 처음 국회 제출된 이후 6년 만인 2021년 8월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쳤다.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등 의식이 없는 상태의 환자를 수술하는 의료기관은 수술실 내부에 최소 1대의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응급수술이나 전공의 수련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몇 가지 사유를 빼곤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과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이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개정 의료법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서 및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제출을 위해 민원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CCTV 설치와 맞물려 PA(진료보조인력) 관련 논란도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간호조무사가 모인 커뮤니티에는 앞서 자신을 100병상 규모 병원의 수술실 어시스트(보조)라고 소개한 이가 “수술실 CCTV 설치에 대비해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조무사는“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든지 어시스트 업무와 상관없는 타부서로 보직이 변경돼 수술실에서 쫓겨나고 있다. 정보를 공유하며 대응해나가자”라고 적었다.
간호조무사 협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일자리 위협을 받는다는 민원이 들어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라며 “간호조무사가 수술 보조를 할 수 있다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병원 측이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로 대체한다고 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등을 복지부에 질의한 상태고 답변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