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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불청객 '통증의 왕'…노인 무료백신, 지자체만 수급난 왜

중앙일보

입력

전남 나주시가 질병 면역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예방접종비를 지원한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전남 나주시가 질병 면역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예방접종비를 지원한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대상포진 발병률이 높아지는 7~8월 관련 백신을 놓고 전국 지자체가 물량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백신 일반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지자체들이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접종사업에 사용되는 백신 물량만 품귀를 빚고 있는 상황이다.

앞다퉈 대상포진 백신 지원에 접종 차질

25일 인천 남동구청에 따르면 남동구는 지난 21일 지역에 1년 이상 산 만 65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무료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지난 3월 ‘남동구 대상포진 예방접종 지원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진 지 5개월 만이다. 남동구 관계자는 “대상포진 무료 접종을 시작한 지자체가 많다 보니 백신 물량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통증의 왕’이라고 불리는 대상포진은 한여름 발병률이 높아 여름 불청객으로도 꼽힌다.

대상포진 백신 수급난은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남동구 등에 따르면 어르신 대상포진 무료 접종을 조례로 정한 전국 지자체는 116곳으로 파악됐다. 이중 남동구에 회신한 지자체 46곳 중 32곳(70%)은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12곳(26%)은 아예 백신 접종을 중단하거나 잠정 연기했다. 나머지 2곳(4%)은 접종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자체라고 한다. 지난 21일 취약계층 대상 무료 접종을 시작한 서울시 한 구청 측은 “일단 초도 물량만 긴급 공수해 접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도 “겨우 물량을 확보했는데 여름철이라 백신 인기가 높아 언제 소진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대상포진백신 '스카이조스터'.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대상포진백신 '스카이조스터'.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지자체끼리 벌이는 백신 난은 왜 벌어졌을까. 제약 업계에 따르면 대상포진 백신은 한국MSD의 ‘조스타박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 한국GSK의 ‘싱그릭스’ 등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생백신인 조스타박스와 스카이조스터는 1회 접종에 가격이 12만~18만원 정도다. 예방률은 60%대로 알려졌다. 사백신(유전자재조합)인 싱그릭스는 2회 맞아야 하고 가격이 50만 원대지만 예방률은 97%다. 지자체는 가격이 저렴한 백신을 선호한다. 그런데 조스타박스의 국내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스카이조스터에만 수요가 쏠리게 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조스타박스가 거의 공급되지 않는 추세에서 고려할 건 스카이조스터뿐인데 전국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사업을 도입하다 보니 전국적으로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수급난이지만 일반 접종엔 이상 없어”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 사진 질병관리청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 사진 질병관리청

지자체가 백신 수급난을 겪고 있지만 일반 병·의원에서의 백신 접종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관련 물량은 별도로 관리해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접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동네 병·의원 등에서 접종이 가능하단 뜻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비급여진료비 정보’에 따르면 서울 내 의원급 의료기관 5457곳에서 스카이조스터 등 대상포진 접종을 할 수 있다고 나온다.

질병청은 지자체가 겪는 백신 수급 불안정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대상포진 접종은 현재 국가 필수 예방접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수급관리를 따로 하지 않는다. 질병청 관계자는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지자체 상황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지자체 물량을 맞추기 위해 SK 측이 생산 라인을 늘릴 수 없을 테니 수급난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는 질병청에 대상포진 백신 수급을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로 했다.

만 65세 이상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은 현 정부 공약이기도 하다. 질병청은 국가 필수 예방접종 대상에 대상포진을 넣어야 하는지 등을 평가하는 ‘국가 필수 예방접종(NIP) 확대를 위한 신규도입 우선순위 설정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세금을 들여 무료로 지원하는 게 국민 건강에 이득인지 등 타당성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8월에 가장 많이 발생…주의점과 예방법은

‘통증의 왕’으로 불리는 대상포진은 한여름 발병률이 높은 질병이라 여름 불청객으로도 꼽힌다. 권순효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교수가 설명하는 대상포진 특성과 예방법 등을 전한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가 1차 감염 후 신경절에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다시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특히 7~9월에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대상포진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두 해 모두 8월에 가장 많았다. 에어컨 등으로 실내외 온도 차가 커지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워 환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로 걸리는 연령대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50대 이상 성인이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대상포진의 발병률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대상포진 환자는 2010년 48만5544명에서 2016년 69만2266명으로 43%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60~70대에서 환자가 가장 많았다. 대상포진은 부위에 따라 안구 대상포진이나 안면 마비, 소변을 보지 못하는 신경원성 방광 등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고령 환자나 면역 억제 상태의 환자에게는 범발성 대상포진, 뇌염 등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고령인 대상포진 환자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의 위험도가 높아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부 발진이 발생하기 수일 전부터 해당 부위의 통증이 발생한다. 미열·근육통 등의 전신 증상이 동반될 때도 있다. 피부 발진이 발생하기 전에는 이러한 증상만으로 대상포진을 의심하기 어렵다. 하지만 찌릿찌릿한 통증이 편측으로 발생한다면 대상포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이후 붉은 반점이 신경을 따라 나타난 후 물집 여러 개가 무리를 지어 나타난다. 수포는 10∼14일 동안 변화하는데, 고름이 차면서 탁해지다가 딱지로 변하게 된다. 접촉 등에 의해 물집이 터지면 궤양이 형성될 수 있다. 보통 2주 정도 지나면 딱지가 생기면서 증상이 좋아진다.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권순효 교수. 사진 강동경희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권순효 교수. 사진 강동경희대병원

항바이러스제의 빠른 투여로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 발병 초기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1주일간 주사 또는 복용해 바이러스에 의한 신경 손상 정도를 감소시켜야 한다. 추후 신경통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급성기 통증에 대해선 적절한 진통제 투여를 고려할 수 있으며, 항경련제와 항우울제도 사용할 수 있다. 치료 후에도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길게는 수년까지 지속하는 사례가 많아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대상포진은 잠복 상태의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나이가 들면서 활성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예방접종 이외의 예방법은 없다. 이에 따라 50세 이상에서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이 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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