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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병원 '50억 환불대란'…건보공단 '특사경' 논쟁 불붙다

중앙일보

입력

병원 이미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픽사베이(Pixabay)

병원 이미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픽사베이(Pixabay)

서울 강남구에 있던 한 한방병원은 암 전문 병원으로 이름을 알리며 환자를 모았다. 직원 270여명에 병원 규모가 17층에 달할 정도였다. 이 한방병원의 패키지 항암 치료는 수천만 원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병원은 비의료인이 의료인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으로 지난 5월 폐쇄 조처됐다.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환자들은 돈만 내고 병원 이용을 못 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50억 원대에 이르는 ‘환불 대란’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피해자를 법률 대리하는 장성환 법무법인 담헌 변호사는 “사무장 병원은 재산이 이미 빼돌려져 있어 피해자들이 돈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사 중 폐업하는 사무장 병원 80%↑…불붙은 특사경 도입 논쟁

사무장 병원은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내세워 비영리법인 명의로 운영하는 병원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주범이자 국민 건강까지 위협하는 존재”라는 게 보건·사법 당국의 시각이다. 하지만 이런 불법 병원들의 부당이익 환수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24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1년 12월까지 13년 동안 적발돼 환수가 결정된 불법개설기관 1698곳에 대한 총 환수 금액은 3조3764억원에 달한다. 환수율은 6.02%(2026억원)에 불과하다. 환산하면 하루 7억원씩 건보 재정이 사라지는 셈인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라지는 병원들이 적지 않아 환수율이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불법개설기관 1698곳 가운데 현재까지 1635곳(96.3%)이 폐업했다. 이 중 1404곳(82.7%)은 환수가 결정 나기 이전인 수사 중 문을 닫은 기관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사무장 병원 대부분은 수사 중일 때 폐업신고를 해 부당이익 환수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 연합뉴스

이 때문에 건보공단은 불법개설기관에 대한 신속한 수사 종결을 위해 공단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사경이 만들어지면 수사 착수 후 석 달 만에 환수 처분이 가능해 약 2000억원에 이르는 재정 절감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사경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전문적 지식이 정통한 일반 공무원 등이 검사 지휘를 받고 특정 직무 범위 내에서 수사를 계획·실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말한다. 현재 수사기관이 사무장 병원을 수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8개월(최장 4년 5개월)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경찰 단계에서 인력 문제나 전문성 부족 등을 이유로 수사가 길어진다. 적임기관이 이를 맡아야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위 기관인 보건복지부에도 특사경이 있지만, 인력이 2명에 불과해 전국 다발적인 사건을 맡기엔 부족하다고 이들은 본다.

건보공단 내 특사경 설치는 지난 7월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건보공단 임직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제21대 국회 개원 초인 2020년 정춘숙·서영석·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단 특사경 도입 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장기 계류 중이다.

“전문 특사경 필요”…의료계는 반대

병원의 수술 장면.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픽사베이(Pixabay)

병원의 수술 장면.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픽사베이(Pixabay)

사무장병원 수사 경험이 있는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공단 내 특사경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인력이 부족해 많은 사건을 처리하기 어렵다 보니 의료 등 전문적인 영역에선 특사경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에 특사경이 있는 것처럼 전문성을 가진 조직은 수사기관보다 빠른 수사가 가능하다. 의료기관 감시가 더해져 범죄 예방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건전한 건강보험 재정을 생각했을 때 특사경과 같은 엄격한 통제 장치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의협) 대변인은 “의료기관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며, 행정력을 동원해 의료인을 억압하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사무장 병원의 만연은 조사 권한 문제가 아니라 개설 허가 과정 등 허술한 제도 때문”이라는 입장을 담아 최근 국회에 의견서를 냈다. 한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사무장 병원 고리를 끊을 실효성 있는 대책이 특사경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사무장 병원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행태가 반복되는 건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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