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상현의 과학 산책

지식이 빛나는 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몇 해 전, 인터넷 수학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나는 수학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수학은 오일러·가우스 같은 천재가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나처럼 재능 없는 사람에게는 (하찮은 업적을 쌓는) 총알받이 역할만 남게 되는 걸까요?”

사실 수학을 업으로 삼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회의에 빠지곤 한다. 업계의 비밀이랄까. 수학자의 매일매일이 천재적인 남의 재능과의 조우이기 때문이다. 감탄과 질투 사이 어딘가의 연속. 다른 많은 분야도 비슷하리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자신의 재능을 확대해석하여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은 나쁜 접근이다. 내가 오를 수 없는 길을 나에게 가도록 강요하는 것과도 같고, 결국 남는 것은 목적 잃은 삶일 수도 있다. 정직은 조금 나은 답이다. 재능의 편차, 업적의 경중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인생은 불공평해.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조언이다. 그리고 하루의 끝마다 되뇐다. 나의 성취나 실패는 나의 가치를 정의하지 못한다. 더욱 바람직한 답은 지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천재들의 업적이라고 해서 영원하고 절대적인가. 치명적 오류와 함께 탄생한 역사적 발견도 많다. 게다가, 무슨 지식이 영원할까. 수십억 년이 지나고 나면 태양은 지구를 완전히 불태우고 백색왜성의 잔해만 남기게 된다. 우리의 모든 지식도, 그 심오함을 기억할 사람도 종국에는 소멸할 것이다. 지식의 영속성도, 실은 찰나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어떠한 수학적 지식도 압도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인류 최고의 난제도, 정작 풀린다 한들 우리의 일상을 그리 변화시키지도 못한다. 그런데 수학의 신비는, 막상 쓸모를 찾기 어려운 지식 하나하나가 모이면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직결되는 위대한 지식의 유기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바로 지식의 빛나는 순간이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