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 살인 사건에 대한 분노와 공포와는 별개로 교육계에선 사망한 초등학교 교사 A씨의 공무상 재해(순직)를 인정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A씨는 지난 17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교직원 연수 기획 업무를 준비하기 위해 등산로를 통해 학교로 가던 길에 피의자 최모(30)씨와 마주쳐 참변을 당했다.
빈소에서 만난 A씨의 지인과 동료들은 “출근길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순직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21일 애도 논평을 내고 “공무상 재해로 인정돼 선생님의 명예와 유가족의 한을 풀어드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9일 피해자 A씨의 빈소를 찾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교육청 소속 노무사와 사실관계를 확인해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출근길 사고도 순직 인정…통상적 경로인지가 쟁점
순직 인정 여부가 화두가 된 건 공무상 재해 인정 요건이 그만큼 까다롭기 때문이다. 국·공립 교원인 A씨의 공무상 재해(순직) 인정 여부는 공무원연금공단의 조사와 인사혁신처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공무원이 공무상 질병이나 부상으로 재직 또는 퇴직 후 5년 이내 사망했다고 인정받으면 유족에게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의 24배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재해보상을 받은 교육직 공무원은 883명이다. 이중 순직을 인정받은 이는 매년 3~5건 정도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르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다쳐 사망한 경우는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A씨의 경우 등산로를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공무상 재해 심사 사례집」(2019)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1월 산길을 걸어 퇴근하던 중 미끄러져 왼쪽 발목이 꺾여 부상을 입은 사례는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인사혁신처는 “산길을 이용한 사고 장소는 도보 이동 시 퇴근 경로에 위치한다”면서도 “근무지와 주거지 위치를 고려할 때 청구인의 퇴근 경로를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에 의한 퇴근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발간한 심사 사례집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등장한다. 한 공무원은 2020년 4월 소음, 먼지, 햇빛 반사 등을 피하기 위해 등산로와 산책로를 이용해 도보 출근하던 중 발목을 접질려 다쳐 보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근무지와 주거지 위치를 고려할 때 통상적 경로와 방법에 의한 출근 경로로 보기 어렵다”며 불승인 판단을 내렸다.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정책관 관계자는 “단순히 등산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불승인 판정을 내리진 않는다. 출퇴근경로도, 근무지와 주거지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한다”고 밝혔다.
전문가 “구체적 사실관계 따라 판단 달라질 듯”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산재 전문 사공훈 노무사는 “실무에서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은 사실관계에 따라 폭넓게 인정된다"면서 “A씨가 평소 등산로를 이용해 출근한 기록, 대로변 출근길과 등산로 출근길의 시간 차가 적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면 순직 인정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산재 전문 김한빛 변호사는 “‘통상적 경로’는 내비게이션 상 나타나는 경로, 즉 보통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기준이 될 때가 많다”며 “A씨가 택한 등산로가 학교로 가는 통상적인 길이 아니라고 판단할 여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A씨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출퇴근 용도로 등산로를 이용한다는 입증 등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사혁신처가 A씨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다수 공무원 재해보상 사건을 맡았던 김위정 변호사는 “인사혁신처보다 법원이 요건을 폭넓게 해석해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법원 “체력단련 목적 도보 퇴근도 순리적 퇴근길”
지난 2004년 7월 교내 생태연못 조성 기획 업무를 맡고 있던 초등학교 교사 B씨는 견학 차 동료들과 한 송어양식장을 방문했다. 그후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퇴근을 했다. 하지만 시내버스가 파업하는 바람에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졌다. 평소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백두대간 종주계획'을 갖고 있던 B씨는 체력단련을 목적으로 자택까지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걸어 퇴근하기로 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은 왕복 2차선 도로를 걷던 B씨는 승용차에 치여 사망했다.
당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B씨의 사망이 “공무와 인과관계가 없다”며 유족보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2005년 11월 “체력단련을 목적으로 1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걷고자 하는 생각에 퇴근 방법을 도보로 선택하였다 하더라도 순리적인 퇴근 방법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며 연금공단의 처분을 취소했다.
‘사고’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보통 출퇴근 공무상 재해 사건에서 ‘사고’는 범죄가 아닌 교통사고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김한빛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개인적 원한이 아닌 ‘묻지마 범죄’이므로 교통사고처럼 예측불가능한 사고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넓은 의미로 사고를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