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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 비용 70% 보조…"中 제친다" 인도 극단적 혜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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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보기술(IT) 강국인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의 주축으로 자리잡겠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대만과 갈등으로 ‘세계의 공장’ 입지가 흔들리는 중국을 대신해 반도체 불모지였던 인도를 ‘인구 대국’만 아니라 ‘반도체 대국’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각오다.

지난달 28일, 인도 구자라트주(州) 간디나가르에서 열린 ‘세미콘(반도체) 인디아’ 행사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내놓은 일성이 이를 보여준다. 모디 총리는 “레드카펫을 펼쳐뒀다. 선점하면 큰 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달 '세미콘 인디아 2023'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달 '세미콘 인디아 2023'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중국 견제에 중국 자리 노린다 

인도의 전략은 미국의 자체 공급망 확보 전략이자 중국 견제 전략인 디리스킹(위험제거)에 발을 맞춰 중국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설계·장비 분야는 미국, 소재는 일본, 생산은 한국·대만, 후공정(ATP, 조립·테스트·패키징)과 일부 범용 칩 생산 시장은 중국으로 나뉜다. ‘인도의 꿈’은 한국·대만과 같은 ‘칩 생산 거점’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집권 이후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주도해온 모디 총리는 2021년부터는 반도체에 ‘올인’하고 있다.

①극단적 인센티브 불사= 모디 정부는 올해 ‘반도체 생산 공장 유치’를 목표로 100억 달러(약 13조원)의 보조금 지급 계획을 내놨다.이와 별도로 해외 반도체 기업이 인도에 공장을 설립하면 인도 중앙정부가 시설 건립 비용의 50%를, 주(州) 정부가 20%를 지급한다. 유럽의 기술 전문 매체인 이이뉴스 유럽(eeNews Europe)은 “극단적 수준의 인센티브”라고 평했다. 인도의 테크 전문 매체 애널리틱스인디아매거진은 “인도 정부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현지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사활을 걸었다”고 전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마이크론·AMD 인도 투자 약속

인도의 제안에 가장 먼저 호응한 건 탈(脫) 중국이 시급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다.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은 이달 모디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에 반도체 후공정 공장 건설의 첫삽을 뜬다. 전체 투자액 27억5000만 달러(약 3조6000억원) 중 70%는 인도 중앙정부와 주 정부가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마이크론은 30%(8억2500만 달러, 약 1조760억원)만 투입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AMD는 벵갈루루에 4억 달러(약 5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반도체 디자인 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 전문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도 같은 지역에 4억 달러를 들여 엔지니어링 센터를 짓기로 했다.

대만과 일본도 인도로 향하고 있다. 애플의 최대 협력사인 대만 기업 폭스콘은 인도에 반도체 시설 조성을 목적으로 5년간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를 투자한다. 이는 최근 투자 계획이 보류된 폭스콘과 인도 베단타 그룹의 195억 달러(약 25조5000억원) 합작 투자와 별개의 신규 투자 계획이다. 일본은 지난 19일 인도와 반도체 분야 협력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반도체 부활’을 선언한 일본과 글로벌 생산 기지를 노리는 인도가 반도체 동맹을 결성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강점은 민주주의와 IT 인력

②“인도 체제가 중국보다 유리”=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인도로 눈을 돌린 건 파격적인 인센티브 때문만은 아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미국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신뢰할만한 공급망 파트너’ 임을 부각하고 있다. 쿼드가 대표적이다. 인도 정부는 미국 주도의 안보 동맹체인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와 다자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의 일원임을 내세운다. 산제이 쿠마르 모한티 뭄바이국제인구과학연구소 교수는 “인도의 정치적·민주적 체제가 중국보다 글로벌 투자에 더 유리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강조했다.

“칩 설계 IT 인력만 5만명” 

③거대한 IT 인력, 인도가 압도= 영어를 구사하는 고급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점도 인도의 잠재력 중 하나다. BBC는 인도 정부가 ‘칩스 투 스타트업(Chips to Startup)’ 계획을 통해 대규모 집적회로(VLSI) 및 임베디드 시스템 설계 전문 분야에서 8만5000명의 우수한 엔지니어를 양성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카티르 탄다바리안 파트너는 “현재 인도는 칩 설계 분야에 전 세계 인재의 20%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인도인이 5만 명 가량 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인도 간디나가르에서 열린 반도체 컨퍼런스 '세미콘 인디아' 행사 시작 전 키오스크에 방문객들이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인도 간디나가르에서 열린 반도체 컨퍼런스 '세미콘 인디아' 행사 시작 전 키오스크에 방문객들이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④물·전력 등 인프라 개선도 착수=인도는 반도체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전력과 물 확보를 위한 투자도 대폭 늘렸다. 미국 공공정책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인도의 반도체 준비도 평가 보고서’를 통해 그간 인도 연방정부의 투자로, 반도체 클러스트 조성 예정지인 구자라트주의 돌레라와 카르나타카주의 미수루 등 여러 지역에 최근 상하수도·항만·공항·도로·고속철도 인프라가 크게 개선됐다고 전했다. 현재 인도의 발전 설치 용량은 410GW(기가와트)로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다.

글로벌 반도체 전자산업 공급망을 대표하는 협회 SEMI의 최고경영자(CEO)인 아지트 마노차는 “2023년은 인도 역사상 처음으로, 지정학, 국내 정책, 민간 역량이 유리하게 정렬돼 반도체 생산의 플레이어로 도약한 이정표의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지브 찬드라세카르 인도 정보통신부 장관은 “인도는 10년 내에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국 중 하나가 될 것이며, 과거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자리 잡기 위해 30년간 2000억 달러(약 260조원)을 쏟아부은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컴퓨터 마더보드에 마이크론 로고가 표시된 스마트폰이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컴퓨터 마더보드에 마이크론 로고가 표시된 스마트폰이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약점, 차별적 관행에 인프라 부족 

다만 현실적인 걸림돌도 적지 않다.
①“외국인 투자의 무덤”= 중국 신화통신은 “인도는 외국인 투자의 무덤”이라면서 “인도의 차별적인 사업 관행, 취약한 제조업 역량, 빈부 격차 등 고착된 문제가 ‘인도의 꿈’을 방해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인도는 도시화, 인프라, 인적 자원 개발, 급속한 제조업 발전이 수십 년에 걸쳐 선행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②제조업 인프라 부족= 또 인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2021년 기준 14%로 27.44%에 이르는 중국의 절반 수준이다. 항공·항만·인터넷·전기 등 인프라 보급률도 중국에 뒤처지며, 인도의 도시화율은 23%(2021년 기준)로 중국의 65.2%(2022년)의 절반 정도다. IT 산업 발전을 뒷받침할 제조업 인프라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지적 역시 매섭다.

“인도, 눈높이 낮춰야” 의견도

이에 따라 인도가 반도체 공급망에 합류하려면 ‘칩 생산’이 아닌 ‘후공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인도는 한국·대만 같은 생산 거점이 되겠다는 눈높이를 낮춰, 후공정 분야 점유율 13%인 말레이시아와 경쟁하면서 공급망에 합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현재까지 인도 정부가 유치한 해외 기업 투자는 후공정과 디자인센터 등이며, 생산 공장은 전무하다.

미국과 중국 국기 사이에 놓여 있는 중앙 처리 장치(CPU).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국기 사이에 놓여 있는 중앙 처리 장치(CPU). 로이터=연합뉴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인도에 칩 제조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곳은 미국·한국·대만 정도”라면서 “이들 나라는 자국에 공장을 짓지, 굳이 인도에 진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중국에 칩 제조 공장이 들어선 건 탄탄한 시장이 형성돼 있어서인데 인도는 시장이 미미하고 전반적인 환경이 조성되지 않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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