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안산시 노동자 작업복 세탁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루밍 세탁소 직원들이 7일 오전 수거해온 작업복을 분류하고 있다. 직원들은 ″간혹 작업복 안에 드라이버, 볼펜 등 작업 도구가 들어있어 주머니를 뒤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탈의 전에 주머니를 확인하고 맡겨주면 보다 신속하게 세탁, 배송할 수 있다″고 했다. 손성배 기자
“여기 우리 공장 작업복도 챙겨가세요.”
7일 오전 9시49분 경기도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 인근 공장에 세탁물을 배송하기 위해 들른 ‘안산 블루밍 세탁소(경기도 작업복 세탁소)’ 트럭을 발견한 동경이엔지 권영만 공장장은 수거·배송을 맡은 김정례(54)씨와 이미란(56)씨를 직원 탈의실로 이끌었다. 입고 있던 작업복 상의를 벗어 건넨 권 공장장은 “작업복을 한데 모아두면 가져가서 깨끗이 빨고 개서 갖다 주는 데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3일 시범 운영을 시작한 ‘블루밍 세탁소’는 경기도와 안산시가 협력해 만든 1호 공공 작업복 세탁소다. 기본 1벌 당 1000원(상·하의 각각 500원), 동복 1벌 당 2000원으로 시중 세탁소(1700~1900원)의 절반 수준의 저렴한 가격에 수거부터 세탁, 건조, 배송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산단의 50인 미만 사업체와 노동자를 우선 지원 대상으로 하고, 세탁물은 작업복으로 제한했다.
이날 주말 사이 세탁을 완료한 작업복을 배달해야 하는 반월국가산업단지 내 업체는 총 6곳, 매주 월요일 수거해야 하는 업체는 9곳이었다. 세탁소 직원들은 배송 세탁물을 1t 트럭에 옮겨 싣고 최단 동선으로 배달·수거 대상 업체를 정리한 뒤 세탁소를 떠나 첫 배송지로 향했다. 오전 9시34분 첫 행선지인 다산(합금 제조업) 사무실에 들러 하의 12개, 셔츠(티) 7개를 탈의실에 두고 가겠다고 알린 뒤 바구니에 쌓인 세탁물을 주워 담아 재차 트럭에 올랐다. 첫 배송지에서 800m 떨어진 도원이엔지(자동차 부품 금형 제조업)에선 작업복 상의 5개와 하의 2개를 내려놓고 같은 양의 빨래를 다시 챙겼다.
공단 구석 구석을 누빈 트럭은 오전 11시까지 2시간 동안 반월산단 내 제조업체 5곳에서 상·하의 옷가지 40여 벌을 수거해 세탁소로 돌아왔다. 오전 일정 마지막으로 찾은 거래처인 성진엠테크의 관리팀 이근주 부장은 “기존 일반 사설 세탁소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작업복 수거부터 배송까지 이틀에 한번씩 원스톱으로 해주니까 정말 편리하다”며 “블루밍 세탁소를 이용하기 전엔 여름철에 세탁비로 60~70만원이 들었는데, 7월 한 달 동안 120벌을 맡기고도 12만원밖에 들지 않아 비용절감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반월국가산업단지 50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 작업복 세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기도-안산시 블루밍 세탁소의 수거·배송 직원 이미란(56)씨가 7일 첫 배송지인 다산(주)을 찾아 세탁물을 배달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영세업체 지원, 장애인 고용…두마리 토끼를 잡다
경기도와 안산시가 운영비를 보조하는 블루밍 세탁소는 중소기업 지원과 장애인 고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운영은 경기도장애인복지회 안산시지부가 맡고 있다. 이날 수거 업무를 맡은 이미란씨는 “업체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은 분들이 많은데, 묵묵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며 “그분들의 작업복을 깨끗하게 세탁해 가져다 드릴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월 급여는 세전 240만원 수준이다.
세탁소장인 이영식(69) 경기도장애인복지회 안산시지부장을 포함해 6명의 세탁소 구성원은 모두 장애인이다. 이 소장은 “일하고 싶어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모여 봉사와 생계 모두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이 사업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단 내 노동자들이 작업복도 신사복처럼 깨끗하게 세탁해 입을 수 있도록 세탁 전문 교육을 받는 등 보다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일거리가 많아지면 힘은 더 들겠지만, 더 많은 영세 업체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노동자 작업복을 수거, 세탁, 배송하는 블루밍 세탁소 1호를 지난달 12일 공식 개소하고 운영 중이다. 7일 오전 세탁물 배달 과정에 세탁소 트럭을 발견한 권영만 동경이엔지 공장장은 ″우리 작업복도 가져가라″며 작업복 상의를 벗어 건넸다. 손성배 기자
시범 운영 한달 5000벌 세탁…시흥에 2호점 예정
전국 최초의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2019년 11월 경남 김해시에서 문을 열었다. 광주광역시와 경남 거제, 울산, 대전 등 전국 9개 지역에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운영 중이다. 경기도에선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이민근 안산시장이 민선 8기 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며 각각 노동자 권익 보호 확대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반월산단 내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영세사업장에선, 작업복을 노동자 개개인이 직접 세탁해야 해 번거롭다는 하소연과 가족들의 옷가지와 함께 세탁하다가 가족들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져 왔다. 경기도는 지난해 1월6일 ‘경기도 노동자작업복 세탁소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했고, 안산시에선 지난해 8월 ‘안산시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수요조사 및 운영방안 연구’를 진행해 법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실수요자 조사를 마쳤다.
시범 운영 한달 간 안산 블루밍 세탁소가 세탁한 작업복은 5000벌을 넘겼다. 30곳 정도인 세탁물 위탁 업체 수를 오는 12월 말까지 120곳으로 늘리고 월 세탁 물량도 9600벌까지 확대하겠다는 게 이 세탁소의 목표다. 경기도는 오는 10월 시흥시 시화산단에도 블루밍 세탁소 2호점을 개설하고 예산 지원을 통해 31개 시·군 전체로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작업복 세탁소 수요조사 및 운영방안 연구 책임자였던 남우근 한국비정규직센터 공인노무사는 “수요 조사에서 사업주들과 노동자 모두 회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세탁기 세척력이 낮은 수준이고 고장도 잦아 불편하다고 토로했다”며 “작업복 공동세탁소를 통해 영세사업장 사용자들과 노동자 모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안산시 노동자 작업복 세탁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루밍 세탁소 직원들이 단원구 성곡동 645 타원타크라 3차 세탁소 앞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세탁소장인 이영식(69) 경기도장애인복지회 안산시지부장은 ″작업복도 신사복처럼 깔끔하게 세탁해드리겠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