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새마을금고나 저축은행 같은 비은행 예금기관에서 일시적인 자금 악화가 나타났을 때 한국은행이 유동성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가능성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 방향 기자설명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임건태 신용정책부장, 홍경식 통화정책국장, 우신욱 금융기획팀장. 연합뉴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7일 회의를 열고 대출제도 개편안을 의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SVB 사태를 계기로 부각된 디지털 뱅크런 가능성에 대비해 예금취급기관의 안전판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출제도를 개편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선 한은은 은행에 대한 상시 대출제도인 자금조정대출의 금리를 하향 조정하고 적격담보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자금조정대출은 은행이 필요할 때 정책금리보다 일정 수준 높은 금리에서 자금을 제한 없이 공급하는 제도다. 현재 자금조정대출 금리는 기준금리보다 1%포인트 높게 책정되는데, 기준금리 대비 0.5%포인트 높은 수준으로 낮춘다. 또 은행이 자금조정대출을 받기 위해 제공하는 담보의 범위를 늘린다. 현재는 국채, 정부보증채, 신용증권 등인데 일부 공공기관 발행채권, 은행채, 우량 회사채 등을 추가한다. 대출만기는 최대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한다.
한은은 또 그간 한은의 대출제도 사각지대에 있던 저축은행, 상호금융기관 등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유동성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은법상 금융기관은 은행(은행지주 포함) 뿐이다. 그래서 비은행금융기관은 자금조정대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에서 보듯 은행보다 비은행권에서의 뱅크런 발생 가능성이 커 크다. 이에 한은은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해 중앙회를 통한 자금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한은법 80조는 자금조달에 대한 중대한 애로 발생시, 혹은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금융기관(은행)이 아닌 금융업을 영리하는 자에게 한은이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금통위원 4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한은이 비은행예금취급기관 중앙회에 대출할 때는 은행 자금조정대출에 준하는 적격담보 범위를 적용할 예정이다.

SVB은행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지난해 흥국생명 사태,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은행들로부터 자금 조달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며 “그런 상황을 넘어설 때 제도적으로 중앙은행이 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 은행과 같은 담보를 적용해 최대한 신속히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번 개편으로 시중은행이 약 90조원 규모의 추가 유동성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비은행예금취급기관 역시 위기 시 약 100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은은 이번 개편안이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하겠다고 밝혔다. 홍경식 국장은 “부실하고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곳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곳에 지원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편안은 오는 31일부터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