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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위해 영어공부책 낸 조영학 "검정고시 출신이나 항상 해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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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번역가 조영학

권혁재의 사람사진/ 번역가 조영학

“나는 네 나이 때 영어를 전혀 못 했어.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대신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에서 공장 생활을 했거든.
그 후 8년이 지나서야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스물여섯 나이에 겨우 대학교 1학년이 되었으니
영어를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지.”

이는 『딸에게 들려주는 영어수업』의 조영학 저자가 책에 밝힌 고백이다.

출판계에서 흔히 그를 ‘재벌 번역가’라 부른다.
그간 번역한 책이 100여 권이 넘으니 우스개로 다들 그리 부르는 게다.

이런 그가 딸에게 들려주는 영어수업 책을 난데없이 낸 이유는 뭘까.
“어느 날 제 딸이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전까지 딸에게 공부하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딸이 스스로 요청하니 6개월 정도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후에 딸이 대기업에 취업했습니다.
딸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기에 책을 써야겠다 작정했습니다.
제가 홀로 영어를 공부했기에 영어 수업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는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의 공저자다. 그는 집에서 밥상을 차리는 남자인 게다. 그렇기에 그는 호를 부엌데기에서 딴 '붥덱'으로 쓴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붥덱'을 자처한 게다. 실제 사진을 찍으며 그는 결혼 후 지금껏 손에 낀 반지를 단 한 번도 빼본 적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의 공저자다. 그는 집에서 밥상을 차리는 남자인 게다. 그렇기에 그는 호를 부엌데기에서 딴 '붥덱'으로 쓴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붥덱'을 자처한 게다. 실제 사진을 찍으며 그는 결혼 후 지금껏 손에 낀 반지를 단 한 번도 빼본 적 없다고 고백했다.

알고 보면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중학생 나이에 ‘재건학교’를 다녔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더욱이 새엄마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동생을 데리고 열여섯 살에 가출했다.
이때부터 금세공 공장, 인쇄 공장에서 일하며 살아냈다.
어릴 적 심하게 앓은 결핵과 학력 미달로 입대할 수 없었으나,
고등학교 중퇴라고 우겨 입대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끼니를 해결해야 할 사정이었다.
제대 후에야 영문과에 입학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늦깎이 중 늦깎이였다.
늦게 시작했지만, 죽으라고 공부했기에 강단에 서고, 번역가로 누빈 게다.

제대 후 인쇄소에 다시 다니면서 코피 쏟기 일쑤였고,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던 조영학 번역가는 형에게 공부하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그의 속내를 들은 형의 답은 ″그 얘기를 기다렸다″였다. 이후 그는 죽으라고 공부만 했다. 그것이 빠듯한 형의 도움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그런 게다. 그 결과가 영문과 입학과 아울러 4년 장학생이었다.

제대 후 인쇄소에 다시 다니면서 코피 쏟기 일쑤였고,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던 조영학 번역가는 형에게 공부하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그의 속내를 들은 형의 답은 ″그 얘기를 기다렸다″였다. 이후 그는 죽으라고 공부만 했다. 그것이 빠듯한 형의 도움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그런 게다. 그 결과가 영문과 입학과 아울러 4년 장학생이었다.

이렇듯 일가를 이룬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삶의 단어가 뭔지 물었다.
“HAPPINESS입니다. 제게 행복이 언제나 절박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모든 딸과 아들에게 그 무엇보다 행복이 우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