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조직폭력배들이 상의를 벗고 문신을 드러낸 채 ‘화이팅’을 외친다.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49·사법연수원 33기)은 최근 ‘수노아파 하얏트호텔 난동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이 영상을 틀었다. 그러면서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꾹 다물며 화를 삭였다. 신 부장검사의 이런 모습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검사님 표정에서 ‘깊은 빡침’이 느껴진다’”는 댓글도 달렸다.

지난달 30일 수노아파 하얏트호텔 난동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조직원들의 단합대회 영상을 보고 분노를 참고 있다. 사진 SBS 유튜브 캡처
신 부장검사는 지난 2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분노 이전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검찰이 뭘 했나, 국민 앞에서 수치심이 들었다”는 것이다.
폭력조직 수노아파의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 난동사건은 발생 1년 8개월 만에 수사가 마무리됐다. 지난해 2월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난동을 피운 수노아파 조직원 12명을 불구속 송치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7월 신 부장검사가 부임하면서 사실상 재수사에 착수했고, 폭력행위처벌법상 단체 등 구성·활동 혐의로 9명을 구속 기소했다. 30명도 불구속 기소하며 사실상 조직을 와해했다.

신준호 부장검사가 20일 서울중앙지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신 부장검사가 이끄는 수사팀은 이 사건을 수노아파와 호텔 소유주인 배상윤 KH그룹 회장 간의 갈등이 아니라, 조폭이 선량한 시민들을 위협한 중대범죄로 인식했다. 서울과 전남 목포에 흩어져있는 수노아파 합숙소와 유흥업소 등에 들이닥쳐 압수수색 하고, 100회가 넘는 계좌·통신 조회, 디지털 포렌식 등으로 이들의 활동 규모와 탈법행위를 밝혀냈다.
조폭 수사의 경우 보복이나 기타 후환이 두려워서 진술을 수시로 바꾸기 때문에, 진술만 믿고 재판에 넘겼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라는 게 신 부장검사의 설명이다. 그는 “조폭 수사도 여느 수사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증거·영상·문자 등 객관적 증거를 최대한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사를 마무리한 신 부장검사의 표정은 밝지 않다. 조폭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가 제한된 현실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데 한 마리(검찰)의 발을 묶어놔서, 다른 한 마리(경찰)는 쥐 잡느라 과로사하고 결국 쥐떼만 창궐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경제범죄 목적의 단체의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가 가능하고, 조폭 수사는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 그제서야 보완수사 형식으로만 가능하다.

폭력조직 수노아파 조직원들이 전국 단위 또래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서울중앙지검 자료
신 부장검사는 “직접 수사와 보완수사는 사건의 실체에 대한 접근과 완성도, 성과 면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서민을 갈취하는 불법 사채업, 보이스피싱, 불법 도박장과 성매매 등은 여전히 조폭들의 지하경제에서 이뤄지고 있다. 제대로 수사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신 부장검사는 또 “조폭도 의리로 움직이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라며 “두목이 아니라 돈이 형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줄을 말리고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게 조폭 척결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영상에 등장한 이들과 같은 ‘젊은 조폭’들의 경우 “철딱서니 없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만 보고, 명품 걸치고 외제차 굴리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는, 조사해 보면 아무 책임 의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강력부 평검사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과장 등을 거친 신 부장검사는 검찰 내에서 ‘강력통’으로 분류된다. 그는 “약자를 갈취하거나 핍박하는 자들을 응징할 때의 통쾌함과 현장수사의 매력 때문에 이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강력부 검사를 조폭이 협박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신 부장검사는 “‘검사 배에는 칼 안 들어가느냐’는 댓글을 본 적은 있지만 공개적인 협박 사례는 못 봤다”며 “가끔 수감된 조폭들이 ‘검사님, 잘 지내십니까’라는 안부를 묻는 건지, 협박인지 모를 편지를 보내오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