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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뜨거운 일본 경제, 잃어버린 30년 마침표 찍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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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요즘 일본 경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30년 침체에 허덕이던 일본 경제가 ‘부활’하는 것일까. 주식시장부터 심상치 않다. 연초 2만5000대였던 닛케이(日經) 지수가 3만3000을 돌파했다. 누적 30%가 넘는 상승 기록이다. 지난 3월 말 이후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외국인 순매수 자금은 약 4조엔(36조원)이다.

주가만 좋은 것이 아니다. 1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은 0.7%였는데 연간 환산치로 2.7%다. 한국은행의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가 1.4%인 것을 고려하면 일본이 올해 한국을 앞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1998년 이후 지난 24년간 한 번도 없던 일이다.

활기 넘치는 일본경제 부활 주목
주가·성장률, 외국인투자 증가세
일본 내부는 “단기적 현상” 신중론
기업 투자 확대, 임금 인상이 열쇠

기업 실적도 좋다. 지난해 도쿄증권거래소 구1부(舊一部) 상장기업들의 순이익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도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들어 3%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5년간 일본의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2%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변화다. 건전한 거시경제 지표는 국제관계의 변화와도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흐름을 타고 일본으로 대략 20조원이 넘는 반도체 관련 투자가 흘러들어왔다.

일본은 변하는 것일까. 경기침체의 악순환에 갇혀 있던 일본이 드디어 탈출하는 것일까. 그런데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좀처럼 ‘부활’ 얘기를 듣기 어렵다. 대부분 일본 주요 언론의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최근의 좋은 흐름은 긍정 평가하지만, 부활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우선 주가 급상승이 처음도 아니다. 2012년 말 자민당 재집권 당시 9000대였던 닛케이 지수는 반년 만에 1만4000을 돌파했지만, 일본 경제는 부활하지 못했다. 이번은 다를까. 최근 투자 유입 확대 배경에는 극심한 엔저 현상이 한몫하고 있으며, 엔저의 배경에는 물가 억제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펼치는 주요 선진국들과 제로금리를 고수하는 일본 간 금리 차가 있다. 금리와 물가가 낮고, 통화가치마저 낮은 일본의 주식을 싸게 사거나 일본에 공장을 짓는 것이 해외 투자가들에겐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는 외부요인에 의한 결과다. 향후 주요국 금리가 변동되거나 경제 침체로 인해 수입 수요가 감소할 경우 상황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이미 1분기 수출은 4.2% 감소해 6분기 연속 성장세가 꺾였다. 미국·유럽·중국의 경기침체가 원인이다.

한국 일각에서는 미·중 경쟁이라는 국제정치 구조에서 일본이 미국에 ‘베팅’한 것이 주효했다고 관측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설명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활용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은 희소식이지만, 국내총생산(GDP)이 5000조원 규모인 일본 경제의 항로를 변경하기엔 부족하다. 더욱이 최근 일·중의 경제 흐름은 매우 좋다. 재작년 일·중 교역량은 코로나19 사태에도 3900억 달러를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만 노골적으로 편들면 다른 쪽에서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일본의 속내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최근의 호경기를 장기 성장세로 이어갈 수 있을지,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투자와 임금을 결정하는 기업들이다. 그런데 일본 기업들은 이익이 나면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 자산을 매입하거나 자사주를 사들여 주가를 올리는 행태를 보여왔다. 판매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하면 임금을 동결하거나 비정규직을 늘려 가격을 방어했다. 그 결과 수십 년째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서 건실한 소비 수요나 인재 육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 문제를 잘 아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연두 기자회견에서 임금 인상을 촉구했지만, 아직 임금인상은 대기업에 머물러 있고, 중소기업들로 퍼지지 못하고 있다. 임금 인상이 없다면 소비 수요 진작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시다 총리로선 체면이 구겨질 수밖에 없지만, 일본 정부가 거시경제를 움직일 뾰족한 수단은 없다. 막대한 정부 부채 때문에 재정 확대가 어렵고, 이자 부담 때문에 금리도 못 건드린다. 그러니 믿을 건 임금밖에 없는데, 기업이 말을 안 듣는다.

이러다 일본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날려 버릴지 모른다. 최근 조성된 엔저와 초저금리 등 우호적인 경제 환경이 해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 또 사라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 부활 여부는 정부의 해법과 기업의 반응에 따라 갈릴 것이다. 투자와 임금에 대한 기업들의 소극적 태도를 바꾸기 위해 일본 정부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그에 대해 기업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키포인트다.

하반기가 일본 경제 부활의 전환점이 될지, 다시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의 시작점이 될지 주목된다. 투자와 임금을 둘러싸고 일본 정부와 기업인들이 벌이는 이 거대한 ‘수 싸움’의 결과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