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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대한민국의 ‘헤디 라머’를 기대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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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인실 특허청장

이인실 특허청장

현대 사회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에는 약 1500개의 부품이 들어가고, 이들 부품에 관한 특허는 25만 건 정도이다. 그중 가장 기초가 되는 무선통신 기술은 1940년대 발명된 ‘주파수 도약’이라는 특허기술로부터 탄생하였다.

이 기술을 발명한 사람이 과학자가 아닌 당시 유명한 할리우드 여배우였던 ‘헤디 라머(Hedy Lamarr, 영화 ‘삼손과 데릴라’에서 데릴라 역)’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발명에 빠져 지내던 그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승리를 위해 무선조종 어뢰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서는 보안 기술이 필수라고 판단하여, 주파수를 계속 바꿔가며 교신하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인 구글은 2015년 헤디 라머 탄생 101주년을 맞아 “그녀가 없었다면 구글도 없었다”라며 추모하였다.

이 외에도 일회용 기저귀, 바닥 신호등, 자동차 와이퍼 등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 불편함을 해결한 발명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여성 발명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들이 가진 열정과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으며, 특허청은 이들의 발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을 개발·추진해오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도약과 혁신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러한 혁신을 위한 여성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6월 미국에서 열린 지식재산 선진 5개국(IP5) 청장회의에서 선진국 모두가 여성 발명 확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 특허상표청의 부대 행사인 ‘여성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의 연사로서 참석해보니, 미국 정부가 스타트업 펀딩, 멘토링 등 다양하게 여성 발명을 지원하고 있고 여성기업가들이 한·미 여성청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우수한 여성 발명 인력을 육성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2001년부터 여성발명진흥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여성 맞춤형 발명 교육을 제공하고, ‘여성발명왕 EXPO’와 ‘생활발명 코리아’를 통해 여성발명품의 사업화 및 판로개척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2003년 1만3845건에 불과했던 여성의 지식재산 출원 건수는 2021년에는 6만2402건을 기록하여 20년 만에 약 5배나 성장하였다.

헤디 라머가 통신 기술을 발명한 지도 어언 80년이 지났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여성과 지식재산’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바, 대한민국에서 다수의 헤디 라머를 만나게 될 날이 머지않으리라 확신한다.

이인실 특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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