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법 아니죠?”…국회,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에도 법률 42건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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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률 42건이 국회에서 개정되지 못한 채 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제헌절 75주년을 맞아 중앙일보가 위헌·헌법불합치 법률을 전수조사한 결과, 위헌 법률 22건과 헌법불합치 법률 20건 등 총 42건이 개정되지 못했고, 이 중 37건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위헌 법률은 헌재 결정과 동시에 무효가 되고, 헌법불합치 법률도 헌재가 정한 개정 시한을 넘기면 효력을 잃는다. “법의 흠결을 치유해야 할 국회가 본연의 기능을 내팽개쳤다”(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헌법불합치 법률 20건 중 3건은 이미 시한을 넘겨 무효가 됐다.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는 2010년 6월인 시한을 무려 13년이나 넘겼다. 형법 낙태죄 처벌 조항 역시 2020년 12월 시한이 2년6개월 지났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결정은 국회에서 합리적 개선안을 마련하라는 취지”라며 “그런데도 시한을 넘겨 조항 자체가 무효가 되니 건설노조 노숙집회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법안들도 마찬가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과 상임위 회의록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자의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 규정(국가공무원법·헌법불합치) ▶아동학대 범죄자의 어린이집 취업제한 규정(영유아보육법·위헌) 등 28건은 각 상임위의 법안소위에서 단 1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5건은 개정안이 마련조차 안 됐고, 23건은 개정안이 발의된 이후 각 상임위에 회부만 시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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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례 이상 논의된 9개의 법안도 21대 국회 내 개정을 장담할 수 없다. 금융사 직원에게 타인의 계좌번호 등을 물어보지 못하게 한 금융실명법(위헌)의 경우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한 의원이 “급한 법 아니지요?”라며 마무리한 이후 2차례 소위에서 논의가 실종됐다.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를 비공개하는 국회법(위헌)은 “하여튼 조금 더 논의해 보자”라는 발언을 끝으로, 보호관찰 처분자에게 거주지 변동 신고 의무를 무기한 강제한 보안관찰법(헌법불합치)은 “다음에 결정하자”는 제안 이후로 수개월째 방치됐다.

다만 국회의원 선거운동 제약을 완화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 5건은 최다 4회 논의되며 지난 13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국회가 직무유기를 하며, 본인들의 이해와 관련된 것들만 다루는 점이 국회가 불신받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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