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성 연인과 결혼하고 최근 임신 사실을 밝혀 화제가 된 김규진씨. 김씨는 지난해 벨기에의 한 난임병원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다. 사진 김규진씨 인스타그램 캡처
전문직 여성 A(35)씨는 5년 전 산부인과에서 난소 나이가 많다는 진단을 받고 ‘비혼 출산’을 결심했다. 당장 결혼 생각은 없지만 아이는 꼭 낳고 싶어서다. 하지만 비혼 여성에게 선뜻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기 시술(체외수정)을 해주는 병원은 없었다. A씨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10군데 넘게 다녀봤지만, 현재 제도로는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며 “왜 비정상가족을 만들려고 하느냐고 20분 넘게 훈계만 하는 의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여성 김모(29)씨는 결혼이 아닌 동거를 택했지만, 아이를 낳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동거인과 함께 아이를 낳고 기르는 형태의 혼인 외 출산, 폭넓은 의미의 비혼 출산이다. 김씨는 “아이가 ‘혼외자’가 된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국가가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구분하고 지원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25~39세 남성 56%, 여성 71% 비혼 출산에 "긍정적"
비혼 출산, 동거 커플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신한라이프 상속증여연구소가 지난 3~4월 전국의 만 25~39세 남녀 700명(미혼ㆍ무자녀 기혼)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비혼 출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3%에 달했다. 성별로 보면 남성 55.7%, 여성 70.8%로 남성도 절반 이상이 긍정적이었다. 미혼이거나 비혼 의향이 있는 여성일수록 긍정적 인식이 높았는데, 특히 25~29세 여성층에선 79.8%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18%는 현재 혹은 이전에 동거 경험이 있었고, 현재 비동거자의 64.1%가 향후 동거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비친족 간 동거 가구는 47만 2660가구다. 구성원은 101만 5100명으로, 2016년 58만3438명에서 5년 만에 74% 증가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비혼 여성 출산, 생명윤리법상 불법 아냐
하지만 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생명윤리법상 비혼 여성의 단독 출산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대한산부인과학회(이하 학회)가 윤리 지침상 인공ㆍ체외수정과 같은 보조생식술의 시술 대상을 법률혼ㆍ사실혼 부부로 한정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모자보건법상 난임(難姙)은 부부가 정상적 성생활을 하고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뜻하기 때문에 동거 커플이나 비혼 여성은 난임 치료를 위한 시술 대상이 아니라는 게 학회의 입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5월 “자의적 기준”이라며 지침 개정을 권고했지만 학회는 “사회적 합의와 관련 법률 개정이 우선”이라는 이유 등으로 거부했다.
‘동거족’이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ㆍ제도적 차별도 여전하다. 주거와 생계를 공유하고 있어도 응급 상황시 수술동의서 작성, 사망시 시신 인도 등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주택청약·세액공제·육아휴직·출산휴가 등 많은 부분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

차준홍 기자
OECD국가 평균 비혼 출산율 41.9%, 한국은 2.5%
최근에는 인구 절벽의 대안 중 하나로 폭넓은 의미의 비혼 출산이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제도적 차별을 없앤다면 출산율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혼외 출산율은 41.9%인 반면 한국은 2.5%(합계출산율 0.81명)에 불과하다.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 62.2%(1.8명), 노르웨이 58.5%(1.5명), 덴마크 54.2%(1.72명) 등에선 비혼 출산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20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인구정책으로서 비혼 출산’이라는 주제로 제2회 정기 세미나를 개최했다. 앞줄 왼쪽 2번째부터 정운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7번째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 사진 한미연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지난달 ‘인구정책으로서 비혼출산’을 주제로 연 정기 세미나에서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반가정 등록제(가칭)’를 도입해 자녀 양육과 관련해선 혼인 가정과의 차별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1인 가구 등 비혼 인구가 비혼 가정의 형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한국과 OECD 주요국의 결정적 차이”라며 “이들이 ‘동반가정’을 형성하고 서구처럼 적극적인 출산과 양육 활동에 동참한다면, 출산율 회복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옥스포드대 교수도 "최소한 출산의 30% 이상이 비혼 출산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떤 선진국도 1.6 이상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현재 국회에선 비혼 동거ㆍ비혼 출산을 지원하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기독교계와 보수단체의 반대가 거세 입법은 불투명하다.
다만 비혼 출산을 ‘출산장려정책’의 하나로 접근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스웨덴의 경우 비혼출산이 증가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통계적으로 반드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부모가 비혼이든 기혼이든 아이를 중심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확대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동거든 비혼 출산이든 개인이 선택한 삶에 대해 사회적 낙인을 찍는 현상이 바뀌지 않으면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