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차 비닐 안 뜯습니까"…현대차 싹 뜯은 '정의선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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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2005년 기아차 사장에 취임한 정의선은 ‘세 가지가 없다’는 냉정한 진단을 내립니다. 그는 ‘디자인 기아’부터 시작해 경영을 통째로 재설계합니다. ‘후계자’ 아닌 ‘경영인’의 진면목이 드러난 순간입니다. 그리고 2010년 무렵 현대차를 ‘싹’ 뜯어낸 사건이 벌어집니다.

#장면1. ‘기아자동차엔 세 가지가 없다. 주력 시장이 없고(homeless), 팔아도 이윤이 남지 않으며(profitless), 결정적으로 정신이 부재하다(spiritless). 패배주의에 빠져 무기력해진 모습이 뼈아팠다’. 2005년 말 당시 정의선 기아자동차(현 기아) 사장이 취임 후 진단한 회사의 문제였다.

#장면2. 이무원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올 초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교수가 쓴 ‘현대차그룹: 패스트 팔로어에서 게임 체인저로’를 인상 깊게 읽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직접 연락했다. 이렇게 시작한 인연으로 정 회장은 지난달 이 교수 강의실을 깜짝 방문했고, 학생들과 ‘소맥’ 뒤풀이까지 했다.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에 이어 글로벌 3위 완성차 업체로 약진한 현대차그룹의 오늘을 있게 한 인물로 정의선(53) 회장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경영인 정의선’을 읽는 키워드로는 ▶‘나부터’ 마인드 ▶남다른 집중력·실행력 ▶‘까라면 까라’식 현대그룹 기업문화를 뛰어넘는 디테일·호기심 등이 꼽힌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기아에 세 가지가 없다(3-less)’고 진단한 정 회장의 처방전은 ‘디자인 기아’였다. 의미의 본질은 ‘경영을 새로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기아는 제조·설계원가 절감에 주력하면서 조직문화 혁신에 나섰다. ‘우리(아워, our) 팀과 업무, 의사소통, 미래를 디자인하자’는 목표를 내걸었다. 사내에 ▶디자인 아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아워 팀 ▶디자인 아워 워크 ▶디자인 아워 퓨처라는 공지를 띄웠다. 몇 달 지나 직원들 사기가 살아나는 게 보였다.

김현서 디자이너

김현서 디자이너

한때 1조9980억원(1998년)의 적자를 기록했던 기아차는 정 회장이 대표이사(2005~2008년)를 맡으면서 영업이익 3085억원(2008년), 1조1445억원(2009년)을 내는 등 반전에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정 회장은 ‘후계자 기업인’에서 ‘실력 있는 경영인’으로 인정받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기아 대표에서 현대차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0년께 정 회장은 신차 출시 사진 광고를 담당한 팀을 양재동 사무실로 불렀다. 비닐도 뜯기지 않은 신차의 사진이 홍보용 사진에 포함됐던 거다. 오염 방지용 비닐을 떼면 신차라도 중고차로 팔아야 해 이어져 온 관행이다. 정 회장은 “고객은 다 알아본다”며 “별거 아니라고 지나치지 말고 이런 비용은 아끼지도 말자”고 했다.

지금 현대차는 ‘현대차’를 벗어던지는 모습이다. 전동화와 수소를 넘어 도심형 항공기와 개인비서가 될 로봇, 그리고 자율주행까지, 새로 갈아입는 옷은 ‘모빌리티(mobility)’다. 연기를 내뿜으며 직접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기존 자동차 산업에서 전기·수소로, 자율주행으로, 비행기·로봇으로 나아간다는 도전 메시지다.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기업, 즉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한 정 회장 행보는 ‘바탕을 넓히자’는 말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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