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손석구가 2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하는 연기 스타일이 연극에서 되는지 보고 싶었어요.”
20일 개막 연극 '나무 위의 군대' #전쟁 끝난줄 모르고 2년간 숨어산 #나무위의 일본군 2인 이야기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연출 민새롬)로 9년만에 무대 복귀한 배우 손석구(30)의 소감이다. 공연 개막 일주일 만인 27일 서울 마곡 LG아트센터 공연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배우로 시작할땐 원래 연극만 하려고 했는데 ‘사랑을 속삭이라’면서 (실제론 크게 말하는) 가짜 연기를 시키는 게 이해가 안 돼서 매체(영화‧드라마)로 옮겨갔다”면서 “연극을 위해 연기 스타일을 일부러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JTBC), 곧이어 천만영화 ‘범죄도시2’ 악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의 연기 실험이다.
'범죄도시' '나무 위의 군대' 연기방식은 같죠
“제가 찍은 영화 ‘범죄도시2’와 ‘나무 위의 군대’도 이야기가 다를 뿐, 영화이고 연극이어서 다른 게 아니”라고 운을 뗀 그는 이번 연극 출연 이유도 “여태 해온 역할과 달랐다. 제가 연기한 ‘신병’은 정서적으로 맑고 순수한 사람이라 (전작들과) 괴리가 있었다. 나처럼 때 묻은 사람이 이런 순수한 사랑을 할수 있을까 하는 게 컸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는 민새롬 연출, ‘상관’ 역의 더블캐스트 김용준‧이도엽, 신비로운 내레이터 ‘여자’ 역의 최희서도 함께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1945년 일본 오키나와 전쟁중 나무위로 피신한 '신병'(왼쪽, 손석구)과 '상관'의 2년간을 그린다. 오른쪽 최희서가 연기한 '여자'는 내레이터이자 전쟁중 희생된 영혼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사진 엠피앤컴퍼니
‘나무 위의 군대’는 194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두 일본군 병사가 겪은 기막힌 실화가 바탕이다. 전쟁 중 나무 위로 피신한 본토 출신 ‘상관’과 오키나와 토박이 ‘신병’이 2년간 종전된 줄도 모른 채 나무 위에 숨어 산다. 포로가 되는 치욕 대신 죽기를 택하라는 일본군 행동규범 ‘전진훈(戰陣訓)’ 탓이다. 전쟁 경험 많은 상관은 자신을 철석같이 믿는 신병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군인정신을 버릴 수 없고, 신병 역시 고향 섬을 포기할 수 없다. 거짓 희망과 불안 속에 둘은 서로를 점점 견딜 수 없게 된다.
日반전 문학거장, 오키나와 실화 토대 비극
반핵‧반전 목소리를 내온 일본 문학 거장 고(故) 이노우에 히사시가 신문기사를 보고 1985년부터 연극을 구상했고, 그의 사후 미완의 작품을 동료 연극인들이 완성해 2013년 도쿄 초연하며 호평받았다. 전쟁을 저지른 본토와 오키나와 간의 역사적 관계가 인물 속에 녹아든다. 한때 독립국가였다가 일본에 병합된 오키나와는 2등 국민 취급을 받아 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의 전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터도 오키나와였다. 일본군 총사령부는 ‘옥쇄’를 명목으로 오키나와 민간인들에게 자결을 명령하기도 했다.
연출 "손석구 촘촘한 감각으로 연기 접근"

배우 손석구(왼쪽부터)와 최희서는 9년전 같이 연극무대에 오른적이 있다. 당시 조단역을 오가던 그들이 각 100만원씩 대관료를 내어 대학로 외곽 소극장에서 닷새간 공연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연극 ‘온 더 비트’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을 만든 극단 청년단 대표 민새롬 연출은 “손석구 배우의 신병은 누군가(상관)에 대한 믿음이 삶 전체를 휘감은 인물이고 결국 그 배신감, 믿음의 추락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보여주는 역할이다. 손 배우가 많은 전작처럼 그 통증을 섬세하게 선보였다”고 했다. 또 “손 배우나 최희서 배우 모두 세세하고 미시적인 시각, 한 장면 안에서의 심리 변화, 사실적 동선 등의 촘촘한 감각의 접근법을 보여줬다. 아마 영화가 연극보다 짧은 호흡으로 세밀하게 인물심리를 쌓아가기 때문일 텐데, 무대연출에 익숙한 저에게 새로웠다”고 덧붙였다.
9년전 무명땐 최희서와 100만원씩 자비 보태 연극

배우 이도엽, 손석구, 최희서, 김용준이 2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연극은 손석구가 출발점이 됐다. 조‧단역을 주로 하던 9년전 친한 사이인 최희서와 그저 연극이 하고 싶어서 대학로 외곽 소극장을 빌려 닷새간 무대에 오른 데 이어서다. 당시 최희서와 100만원씩 자비로 공연장을 대관했다. 그 사이 배우로서의 입지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손석구는 2019년 드라마 ‘지정생존자’(tvN)에 함께 출연한 이도엽의 연극 공연을 보고 무대가 그리워졌다고 했다. 이도엽의 소개로 공연 제작사 엠피앤컴퍼니와 4년여 전부터 2인극을 준비했다. ‘나무 위의 군대’를 택한 건 “현시대 우리 관객이 볼 때도 가장 땅에 발을 붙인 작업이어서”라고 손석구는 설명했다. 전성기를 맞은 손석구, 최희서 등의 출연에 더해 지난 20일 개막후 입소문을 탔다. 전석 매진에 힘입어 8월 5일까지로 예정한 공연을 8~12일 연장하기로 확정했다.
손석구는 “그 당시 일본의 전쟁, 군대 이런 걸 다 빼도 상관과 신병의 관계에서 공감되는 게 있다. 예컨대 저와 아버지의 관계처럼 (아버지를) 지금도 믿고 있고 이해 안 돼도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고 따르는데 그러기가 사실 힘들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나무 위에 갇혀서 2년간 하면 살의까지 느낄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면서 “지금 직장, 가족과 이런 경험을 다 겪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관객들이 ‘내 얘기다’ 하면서 봐주시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