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배제 방향 옳아, 실력 아닌 실수 평가 안 되게
고교학점제 실시도 변수, 신뢰·타당성 갖춘 입시안 필요
어제 교육부가 현장교사 중심 수능 출제, 카르텔 및 부당광고 집중단속 등 사교육 대책을 내놓았다. 가장 핵심은 ‘킬러 문항’ 배제다. 최근 3년간 수능 및 6월 모의평가 문항 480개를 점검해 보니 총 22건의 ‘킬러 문항’이 나왔다. 교육부는 “공교육 과정 중심의 공정한 수능을 확실히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대통령이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분야의 문제는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말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교육부가 예시로 든 ‘킬러 문항’ 중 지난해 수능 국어 15번은 과학 지문을 읽고 추론하는 문항인데 상용로그, 최소제곱법, 클라이버의 법칙 등 개념이 나온다. 독해력보다 배경 지식의 차이가 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수학(공통) 22번은 함수 문제지만 미적분으로도 해법이 가능해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을 배운 학생이 더욱 쉽게 풀 수 있다.
‘킬러 문항’은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혀 반복적으로 훈련한 수험생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킬러 문항’을 배제하자는 방향 자체는 옳다. 다만 실제 수능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입시 변별력을 갖춘 적절한 난도의 문항을 출제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시급한 과제다. 자칫 ‘쉬운 수능’으로 실력이 아닌 실수에 의해 당락이 좌우되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본질적 입시개혁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학원과 일타강사만 손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특히 2025년 고교학점제 실시 후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선택과목 수가 많아지고, 내신 절대평가로 수능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가뜩이나 내신과 학생부 불신이 큰 상황에서 고교학점제 실시는 입시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아직 본질적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개편 방향의 큰 틀도 공개하지 않았고, 상반기로 예상됐던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발표도 미뤄졌다. 여기에 대통령 발언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입시문제의 실타래만 더욱 꼬였다. 어제 발표한 대책이 대통령의 구미에 맞았는지는 모르나, 본질적 해법이라기보다는 진통제로 증상을 약화시키는 대증요법에 가까웠다.
바람직한 입시는 신뢰도와 타당성을 모두 갖추는 것이다. 수능은 학생부나 내신에 비해 객관성이 커 30년간 신뢰도 높은 시험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국 수험생을 한 줄로 세워 소수점 차로 당락을 결정짓는 게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 선발 방식으로 얼마나 타당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입시개혁의 본질은 신뢰도와 타당성을 모두 확보하는 것이다.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선 대통령의 한마디보다 전문가들의 숙의가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문제제기와 임시방편의 반복 대신 정책적으로 무르익은 방안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