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잡아야겠지만 킬러문항·일타강사 없앤다고 될까” [수능시험 손질 논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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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역의 한 학원가 현장엔 입시학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뉴스1]

수도권 지역의 한 학원가 현장엔 입시학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뉴스1]

대통령실과 교육 당국이 사교육 카르텔 끊기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킬러문항’과 ‘일타강사’가 시험대 위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킬러문항이 사교육 카르텔의 원인이라고 지적했고, 여권 정치인들은 연봉 100억원을 넘나드는 소위 일타강사들의 초과 이익을 지적하며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밝혔다. 프랑스·베트남 순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귀국하고 다음주 초 교육부가 킬러문항 배제를 포함한 수학능력시험 개선 대책을 발표하면 이런 움직임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점쳐진다. ‘망국병’이라고도 불리는 과열 사교육 열풍에 대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대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공교육 정상화라는 대명제와 학벌 사회화란 구조적 원인에 대한 개혁 없이 사교육 혁파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연 킬러문항을 없애면 일타강사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사교육 카르텔이 해소될까. 교육 현장의 교사와 사교육 종사자를 포함한 교육 전문가의 진단을 들어봤다.

연봉 100억 일타강사 인강 연 50만원

전문가들은 일단 킬러문항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엔 대체로 공감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킬러문항이 지금까지 공교육 교육과정 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내용이었다”며 “문제의식 자체는 타당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킬러문항 배제는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은 물론 여당 후보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공약으로 내세웠던 사안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부모 배경이나 거주지역 특성상 사교육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여건의 학생이 월 200만~300만원을 내고 킬러문항에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킬러문항 출제는 불공정한 것이 맞고, 킬러문항 배제는 사실 진작 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킬러문항을 없애는 것과 쉬운 수능을 만드는 것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과정을 벗어난 불필요한 킬러문항을 없애는 것은 찬성한다”면서도 “하지만 수능 자체를 쉽게 하는 것은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을 없애 대학에서 선발하는데 어려움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킬러문항은 없애더라도 수능 시험의 변별력은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킬러문항 배제가 쉬운 수능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교육부의 설명과도 상통한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킬러문항은 수능에서 변별력 확보를 위한 고육지책이다. 수능에서 영어는 절대평가로 바뀌었고 수학 등 다른 영역도 교육 범위가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변별력을 확보하려다 보니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항에서 정답률이 20%에 미치지 못하는 고난도 문항을 넣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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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킬러문항을 없애면 사교육이 줄어들거나 심지어는 없어질 것이란 예측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사교육업체들이 킬러문항을 대비하는 강좌로만 큰 수익을 올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학원 강사는 “킬러문항을 풀어서 만점을 받고 1등급 따기를 겨냥하는 소수정예 강좌와 킬러문항은 포기하고 다른 문항을 집중적으로 대비해 2~3등급을 노리는 강좌는 강사와 수강생, 비용 등이 처음부터 아예 다르다”며 “상대적으로 극소수인 킬러문항 대비 강좌를 없앤다고 사교육 수요가 줄지 의문이고, 학원들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험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수학 과목은 2018학년도 수능에서 정답률이 2%에 불과했던 ‘가형 30번’ 문제 때문에 초고난도의 킬러문항을 잘 내지 않는 추세라고도 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도 “킬러문항이 사교육의 주요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현 입시제도에서 수능이 변별력을 확인하는 장치로 쓰이는 구조 자체를 들여다봐야 하고, 어쩌면 이런 구조가 킬러문항을 낳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험 쉽든 어렵든 수험생들 혼란만 가중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킬러문항을 없애면 오히려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란 예측도 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킬러문항이 사라지면 30~40%대 정답률을 보이는 준킬러문항이 오히려 늘어나 사교육비가 늘어날 개연성이 크다”며 “가령 언어영역의 경우 1~17번 같은 문제가 다수 구성되는 식인데, 그렇게 되면 절대다수의 학생, 특히 3~4등급 학생에겐 수능이 더 어려워지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재수 전문 입시학원 관계자는 “보통 문제가 되는 고비용 사교육이라면 수시에 대비해 내신 등 소위 ‘스펙’을 쌓아주는 강좌와 컨설팅이 가장 먼저 떠오를 텐데 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대비할 수 있는 수능을 목표로 삼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쉬운 수능에서의 관건은 ‘실수하지 않는’ 데 있다”며 “(수험생들은)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이에 적합한 강의와 학원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킬러문항 논란은 수능의 본질에 대한 의문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쉬운 수능이 꼭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김성천 교수는 “쉽고 어렵고를 떠나 수능을 지금처럼 변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면 사교육은 계속 나오고, 기초학력을 평가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간다 해도 인성 면접, 대학별 고사 등의 장치가 추가되는 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수, 삼수가 나오는 배경도 결국 대학서열 때문”이라며 “대학 줄세우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수능 문제를 건드린다 한들 사교육을 없애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자퇴생 4명 중 3명이 반수 등을 이유로 자퇴했다.

지난해 수험생들이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수험생들이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모습. [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킬러문항과 함께 일타강사가 카르텔 깨기의 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현실을 더 정밀하게 살펴봐야 하며, 그 본의와 달리 예기치 않은 부작용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타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비싼 강의료를 내고 대치동 학원을 찾아야 했던 건 이제 옛말이다. 대부분의 일타강사는 메가스터디·이투스 같은 인터넷 강의(인강)나 EBS 온라인 강의에서 활동한다. EBS 강좌는 기본적으로 무료고, 인강 업체들은 연간 50만원 내외면 모든 수능 과목 강좌를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다. 교재비를 고려해도 연 100만~200만원이면 질좋은 강의를 마음껏 들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익명을 요청한 학원가 관계자는 “일타강사를 사교육 카르텔의 주범이라고 배척해 인강을 막는다면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더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오프라인 학원으로 모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쉬운 수능과 일타강사를 언급하는 것을 보고 학원 선생님들이 ‘저건 인강 대신 오프라인 학원으로 다시 모이라는 정책 아니냐’고 고개를 갸웃하더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한 수능’이라는 목적과 오히려 배치될 수도 있다는 반론이다.

킬러문항과 일타강사가 논란의 중심에 선 현실은 역설적으로 공교육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공정한 교육’은 궁극적으로 공교육 정상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발언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는 수능 문제가 쉽든 어렵든 학교 교육만으로는 수능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현실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박주호 교수는 “어느 정도 이권 카르텔이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공교육 현장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교육 자체가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모두 소화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대치동의 한 입시강사는 “학생들 얘기만 들어봐도 특목고 안에서조차 수업 별로 수준차가 심한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고2 학부모인 권석현(50·서울시 마포구)씨는 “수능을 손보기에 앞서 9등급 상대평가로 진행하는 내신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두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리고, 그에 따라 수시로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지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학생들 간의 경쟁과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한 문제풀이 기술 연마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폐해 더 큰 수시 놔두고 왜 수능만 때리나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앞으로 수능이 변별의 수단이 아닌 기초학력 검증 수단으로 가야 한다는 대안이 거론된다. 김성천 교수는 “30년간 치러진 수능의 유효성이 이제 한계에 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수능 초창기 100만명에서 현재 40만명으로 응시생이 급감한 상황에서 재수, 삼수로 학생들의 이탈이 커지고 있어 대학 입장에선 학과수업을 충실히 이행할 학생을 선발하는 게 급한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수학의 미적분·확률통계·기하와 물리 등이 선택과목이 되면서 공대에서는 미적분을 모르는 신입생, 물리학과에서는 기초 물리를 배우지 않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전공 강의를 진행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2025학년도에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와 상대평가인 수능이 충돌되는 지점이 있을 수 있어 이를 고려한 2028 대입개편안을 설계해야 한다”며 “수능을 기초학력 검증수단으로 하고 대학에 선발 자율권을 보장하되, 학생선발기준을 설명하는 기제를 마련해 투명성을 갖추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본적 원인으로 꼽히는 대학 서열화 풍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일 것이란 지적도 있다. 구본창 소장은 “우선 ‘대학서열-노동임금-승진구조-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며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등으로 대학 간판으로 평가하는 인식의 흐름을 바꿔야 하고 그것이 사교육 경감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영 교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립대(UC) 체제처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세칭 명문대 졸업자의 초임 월급이 그렇지 못한 대학 졸업자보다 14% 높은데, 이 격차는 40대에 최대치인 46.5%로 벌어진다. 대학 서열이 취업에선 임금으로 환산되다 보니, 입시경쟁은 식을 수가 없다. 2021학년도 수능 출제위원장을 지낸 민찬홍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대학 랭킹에 따라 사회에 진출했을 때 프리미엄이 다르다는 게 핵심 문제인데, 수능시험이 바뀐다고 우리나라 교육 시장, 경쟁 양상을 바꾸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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