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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이용자 카톡·네이버와 비슷, 디지털 주권 경고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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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호 13면

토종 포털 위기 

“자체 데이터 플랫폼을 개발해 ‘디지털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지난 2019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유럽 국가가 힘을 합쳐 독자적 데이터 플랫폼을 개발하자고 주장했다. 유럽에서 생산된 데이터는 물론, 이로부터 파생되는 부가가치도 전적으로 미국 기업이 차지하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디지털 주권’이 유럽연합(EU)과 미국 간에 전장(戰場)으로 부상한 것이라 해석했다. 전장은 장기간 교착 상태다. 구글의 유럽 검색시장 점유율은 2008년 이후 줄곧 90%가량을 기록 중이다. 한 번 넘겨준 디지털 주권을 되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디지털 주권 상실을 남의 일로만 여기던 한국도 최근 경고등이 들어왔다. 국내 검색시장의 터줏대감인 네이버(54.8%)와 구글(36.6%)의 점유율 차이가 지난 5월 20% 이내로 좁혀진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T) 플랫폼 간 장벽을 허물면 경고 신호는 더욱 선명해진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 통계에 따르면 구글의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의 5월 월간이용자수(MAU)는 4095만1188명에 이른다. 국내 최대 검색 플랫폼 네이버(3888만5316명)를 넘어선 것으로,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최대 플랫폼인 카카오톡(4145만8675명)과 차이는 50만명가량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선두 지위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5100만명 정도인 국내 인구 수를 고려하면 이용자 수 차이는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서비스 체류 시간이 관건인데, 지난해 연간 총 사용시간은 유튜브가 175억 시간으로 카카오톡(66억 시간)이나 네이버 앱(45억 시간)을 앞섰다. 위정현 중앙대 다빈치가상대학장은 “젊은 세대들은 궁금한 게 생기면 네이버 대신 유튜브에 검색하고 있어 사실상 플랫폼 간 구분이 사라졌다”며 “디지털 서비스의 주도권이 영상 기반 검색으로 넘어간 상태에서 국내 기업들은 경쟁에 밀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특수한 상황에 놓인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 시장을 지켜낸 국내 토종 포털이 흔들리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의 역차별을 지목한다. 국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에게 지급한 망 사용료가 대표적이다. 국내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동영상 서비스에서 발생한 대규모 트래픽의 대가로 망 사용료를 부담한 반면,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해외 업체들은 망 사용료를 부담하지 않는다. 망 사용료가 국내에서만 적용되는 기업 간 계약의 개념이라 해외에 본사를 둔 이들 업체는 망 사용료 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광고를 노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망 사용료를 부담하려면 더 많은 광고를 붙일 수밖에 없어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한 것”이라 지적했다. 포털 곳곳에 노출된 광고는 이용자들의 피로감만 키우고 있다.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관계 당국의 지나친 규제도 토종 포털이 경쟁에서 밀린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와 정치권이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포털 뉴스의 편향성을 문제 삼은 가운데 국내 기업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영상 플랫폼의 성장에도 뉴스 소비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업체가 강점을 가진 분야였으나 국내 업체들에만 적용된 규제로 사실상 판도가 갈렸다”며 “유럽에선 지켜야 할 자국 기업이 없으니 강력한 규제에 나서도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국내에선 자국 업체들의 영향도 고려해야 하는데 국내 업체가 더 큰 피해를 본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독과점 남용 행위에 민감한 미국에서도 자국 빅테크 기업 규제엔 신중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2021년 미 하원에 발의된 5개 반독점 패키지 법안 가운데 4개가 회기를 넘겨 올해 1월 폐기된 것이다. 유일하게 통과된 법안은 ‘기업결합 신고비용 현대화 법안’으로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내용이다. 강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미국 정치권에선 올해도 규제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미국 플랫폼 기업들이 규제를 받게 되면 그 빈자리는 틱톡 같은 중국 기업들이 채우는 건 아닌지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며 “온라인플랫폼 규제 강화에 강한 목소리를 내던 미국도 자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입법에 신중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기존 콘텐트를 활용해 새로운 콘텐트를 만드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이다. 생성형 AI의 대표 격인 ‘챗GPT’는 전 세계 디지털 주권을 장악한 구글조차 비상 상황을 선포할 정도로 혁신적인 서비스로 꼽힌다. 단순한 대화형 검색뿐만 아니라 대화를 통해 원하는 서비스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시장 판도가 변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비상 상황을 선포한 구글은 초거대 AI인 ‘람다’를 기반으로 만든 AI 챗봇 서비스 ‘바드’를 공개했다.

국내 포털도 동영상 플랫폼 경쟁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네이버는 ‘서치 GPT’로 알려진 차세대 검색 챗봇을 7월 공개할 계획이다. 카카오도 ‘Ko챗 GPT’(가칭)를 연내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생성형 AI 경쟁에서도 국내 포털의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어 데이터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선 유리하지만 AI 모델 수준과 운영 비용에선 체급 차이가 분명하단 지적이다. 이성엽 교수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국내에선 대기업으로 분류되지만 두 기업을 합쳐도 시가총액이 구글의 절반 수준이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AI 개발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 기업끼리 합종연횡을 통해 어느 정도 자금력을 확보하는 식으로 디지털 주권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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