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방 의료 해결책은…전병율 대한보건협회장

전병율 대한보건협회장이 20일 오후 중앙일보 서소문 사무실에서 지방 의료 붕괴의 원인과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경북 울진군의료원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신장내과·신경과 전문의를 뽑지 못하고 있다. 연봉은 4억4000만원. 한두 명 면접을 했지만 채용에 이르지 못했다.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도 연봉 3억3000만원을 내걸고 재활의학과 의사를 뽑고 있다. 전국 지방의료원(35개) 7곳이 의사를 찾고 있다. 이들에 앞서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은 1년 넘게 공석이던 내과 전문의를 5차 공모 끝에 뽑았다. 속초의료원은 넉 달 만에 응급실 전문의 3명을 채용했다. 산청군은 연봉 3억6000만원이고, 속초의료원은 3억5000만원을 내걸었다가 응모자가 없어 4억2000만원으로 올려서 겨우 채웠다. 충북 청주에서 10억원 연봉을 내걸고도 심장전문 의사를 뽑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지역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4억원이 넘는 연봉을 제시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지역 의료를 커버하던 공중보건의(공보의)도 점차 자원이 줄어든다. 전남·경북·전북·강원·충남 등은 이미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됐다. 지역의 의료 수요는 폭발하고 있는데, 의사를 못 구해 쩔쩔매고 있다. 치료 기술 세계 최고라는 한국 의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전병율 대한보건협회 회장(차의과학대 보건산업대학원장,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그간 쌓인 게 이번에 펑 터졌다”며 그간 정책을 ‘폭탄 돌리기’에 비유했다. 전 회장은 “의대생 선발과 교육이 잘못됐다”며 “의사 양성에 15년 걸리니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전 회장과 일문일답.
지역의사 혼란 의사양성 잘못 탓
강남 출신이 의대 가니 지역 기피
지방의대 입학생 정원 확 늘리고
일정 기간 지역 근무 의무화해야
대도시 출신 의사 지역근무 낯설어
- 지방에 의사가 안 간다. 왜 그런가.
- “의과대학에 가는 애들이 대도시 출신이어서 농어촌이나 지방 소도시 경험이 없다. 이들은 의사가 된 뒤 지방에 혼자 근무하는 걸 상당한 문화적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자녀 교육도 걸림돌로 본다. 간호사·약사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경북의 한 지방의료원 관계자는 “의사의 대부분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왔고, 혼자 산다”고 말했다.
- 4억원 연봉이 결코 적지 않은데.
- “월급이 많고 적음을 떠나 지방에 가서 혼자 수술하고 입원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크다고 한다. 내가 아는 의사가 공공의료기관으로 가려 했으나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 벅차다고 포기하더라. 게다가 요즘 젊은 의사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크게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설령 연봉이 4억원이어도 절반은 세금으로 낸다.”
킬러문항 익숙한 세대가 의사 돼
- 요즘에만 힘든 건 아니지 않으냐.
- “젊은 의사는 전공의특별법에 따라 주 80시간 근무제에 익숙해져서 과거보다 야간 당직이 훨씬 줄었다. 젊은 의사들의 특성이 이렇게 달라졌다.”
2022년 ‘의대 진학 톱 25개 고교’의 소재지를 보면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와 양천구, 부산 해운대구, 대구 수성구 등 경제력이 높은 지역이 대부분이다. 전 회장은 “사교육의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에 익숙한 애들이 의대에 간다.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부유층의 자녀가 의대로 가는, 불공정한 게임이 됐다”며 “의대생 선발부터 잘못됐다”고 말한다. 전 회장은 “이런 애들이 의사가 되면 머리는 좋지만 마음은 덜 따뜻하다. 자신이 손해 보는 걸 감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어떻게 해야 지방의사가 늘어날까.
- “편하게 성적만을 보고 뽑지 말고 성장 환경이나 인성을 고려해야 한다. 예과 2년 동안 인문학적 소양을 가르치고 일정 기간 시골병원에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거기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몸소 느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 수도권 학생 비중을 줄일 방법은.
- “지역 학생 선발(의·약학계열 지역인재전형) 비율을 70~80%(지금은 비수도권의 경우 40%)로 늘려야 한다. 40%로는 티가 안 난다. 대신 전문의가 된 뒤 그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면 의료 공백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 그러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하나.
- “당연하다. 2000년 의약분업 때 351명을 줄였는데, 이만큼에다 ‘플러스알파’를 더해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500명 정도가 적합하다. 30~40명대인 지방 의대 정원을 80명가량으로 늘려 제대로 교육할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의대 신설은 곤란
- 공공의대를 설립하자는데.
- “의대 신설은 절대 안 된다. 의대를 만들려면 우수한 교수진과 연구 역량을 갖춘 병원이 필요하다. 그런 걸 단기간에 갖추는 게 불가능하다. 의대 신설이 학원 만드는 거냐. 2017년 문을 닫은 서남대 의대의 재판이 될 것이다.”
- 의사를 늘린다고 지방으로 갈까.
-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을 면하게 해야 한다. 한국에서 의료행위를 하다 사망사고나 중대 사고가 났다고 의사를 구속하는 걸 다른 나라에서 이해하지 못한다. 의료인 구타, 병원 난동도 문제다.”
- 그런다고 정말 지방으로 갈까.
- “적절한 대우와 보상이 따라야 한다. 환자가 100명에서 50명으로 줄어도 병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의사협회는 은퇴 의사를 활용하자는데.
- “가족이 지방행을 반기지 않는다. 은퇴 의사를 도울 레지던트가 없는데, 밤에 환자를 맡아 줄 동료가 없는데 누가 가려 하겠느냐.”
지방거점병원에 공보의 몰아줘야
- 지방의 민간병원도 의사를 못 구해 문 닫는 데가 많다.
- “보건지소마다 공보의를 보내지 말고 거점병원(민간병원 포함)에 몰아줘야 한다. 이들이 입원환자를 보게 하고 방문 진료팀을 짜서 돌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게 훨씬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 한 주에 세 팀 정도의 방문의료팀을 돌리면 좋다. 시골에서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공보의를 먼저 배치하면 민간 거점병원에 갈 사람이 없다.”
- 공보의와 군의관도 기피하고 장병으로 간다는데.
- “공보의 복무기간이 37개월로 장병의 두 배가 넘는다. 보수 차이도 줄어든다. 그러니 공보의를 기피한다. 복무기간을 24개월 정도로 줄이고 연봉을 올려야 한다.”
- 외국 의사를 수입해야 하나.
- “그렇게 하면 지역 주민이 ‘우리를 무시하느냐’고 반발하게 된다. 주민들이 외국에서 온 의사를 찾지 않을 것이다.”
◆전병율 대한보건협회장=홍익대사범대학 부속고교-연세대 의대를 나온 예방의학 전문의다. 전문의를 따고 1989년 복지부에 특채됐다. 보험급여과장·보건정책팀장·질병정책관·대변인·질병관리본부장 등을 지냈다.
“의사를 못 구하니 환자가 없는 악순환에 빠져”

조승연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광역시의료원장)은 코로나19에 몸을 던져 고군분투했다. 조 회장은 “지방 의료가 총체적 위기에 봉착해 붕괴 직전인데 해결책이 안 보인다. 점점 악화하는데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방의료원들이 의사를 못 구한다. 의사가 없으니 환자가 없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며 “수가를 올려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지방의료원들이 코로나 정상화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연말이면 임금을 못 주는 데가 속출할 것이라고 한다.
조 회장은 “‘의사 연봉 4억원’은 지속 불가능한 급여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상의학과 의사를 구하기가 특히 어렵다. 이 전문 의사가 없으면 CT·MRI를 못 찍게 돼 있어서다. 연봉 5억~6억원이 나간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방의료원 의사를 유치하기 위해 지역의 국립대 의대와 연계해 공공임상교수제를 만들었지만 이마저도 인기가 별로 없다고 한다.
조 회장은 “의사가 지방에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든지, 2년 근무하면 교수 채용의 인센티브를 주거나, 지방의료원 의사를 공무원으로 만들되 월급체계를 달리하고, 시골 근무하는 게 장점이 되도록 종합적인 인력 수급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의료원장도 “지방의료는 사실상 붕괴 직전이다. 이대로 두면 진짜 큰일 난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 씨를 뿌려서 의사를 양성하는 데 최소 10년 넘게 걸린다”며 “정부가 의사 정원 증원, 공공 수가·지역 수가 신설 등을 꺼낸 지가 오래됐는데, 말만 무성할 뿐 하나도 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의사만 부족한 게 아니다. 간호사도 부족해서 간호대학 특강 다니면서 끌어온다”고 말한다.
그는 “그런데 수도권에 대학병원 분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6000개 병상이 새로 생긴다는데, 그러면 지방 의료 인력의 블랙홀이 될 게 뻔하다. 도대체 왜 그런 걸 허가해 주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인건비가 계속 오르는데, 어찌하려는 것인지”라고 한탄했다.
강원도 영월의료원은 영월군의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내과·신경과 의사를 구하고 있다. 비뇨기과 의사가 오랫동안 비어 있다가 최근 공중보건의가 배치돼 해결됐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의사 정원을 거의 다 채웠다”며 “어렵게 맞춰서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속초의료원 응급의학과 의사 연봉이 4억원으로 알려지면서 이게 시장가격처럼 돼 버렸다”고 걱정했다. 경북 울진군의료원은 의사 정원 27명 중 24명이 차 있다. 이 중 5명이 공중보건의이다. 이 의료원 관계자는 “의사들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데,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비용을 맘대로 못 쓴다. 진료의 애로를 덜어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