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양키스-보스턴 라이벌전, 25년 만의 흥행 기록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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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는 유서 깊은 라이벌이다. 30개 구단이 소속된 MLB의 수많은 라이벌 구도 가운데서도 가장 치열한 숙적으로 꼽힌다. 아메리칸리그(AL) 동부지구에 함께 몸담은 탓에 서로를 넘어야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는 숙명도 공유한다. 같은 지구 소속이라 매년 여러 차례 맞붙는데도 두 팀의 맞대결 티켓은 늘 불티나게 팔린다. 티켓 가격이 다른 경기 입장권보다 비싸게 책정되는데도 그렇다.

지난 17일 라이벌 양키스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는 보스턴 선수들. AP=연합뉴스

지난 17일 라이벌 양키스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는 보스턴 선수들. AP=연합뉴스

올해도 두 팀은 MLB에 또 한 번 기념비적인 흥행 이정표를 세웠다. 20일(한국시간) MLB닷컴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아버지의 날'이었던 지난 19일 MLB 16경기에 관중 60만3303명이 몰려 2008년 9월 29일(61만2669명) 이후 약 25년 만에 일요일 경기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MLB닷컴은 "2008년 9월 29일과 2023년 6월 19일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양키스와 보스턴의 더블헤더가 열려 하루에 (15경기가 아닌) 16경기를 치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양키스와 보스턴의 3연전이 포함된 지난 주말 MLB 45경기 평균 관중은 3만5299명으로 집계됐다. MLB가 7월 이전의 주말 3연전에서 경기 평균 관중 3만5000명을 넘긴 건 2016년 6월 25~27일(평균 3만5441명)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 '아버지의 날' 경기 평균 관중인 3만7706명은 2014년 6월 15일의 3만8174명 이후 모든 일요일 경기를 통틀어 최다 관중이기도 하다. MLB 대표 명문구단인 두 팀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결과다.

1923년 양키스타디움 개장 경기에서 워렌 하딩 당시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는 베이브 루스(오른쪽). 그는 이날 친정팀 보스턴을 상대로 구장 1호 홈런을 쳤다. AP=연합뉴스

1923년 양키스타디움 개장 경기에서 워렌 하딩 당시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는 베이브 루스(오른쪽). 그는 이날 친정팀 보스턴을 상대로 구장 1호 홈런을 쳤다. AP=연합뉴스

양키스와 보스턴의 라이벌 관계는 벌써 100년이 넘었다. 지금은 양키스의 레전드지만, 한때는 보스턴의 간판이었던 베이브 루스의 이적이 그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보스턴은 초창기 MLB의 최강팀이었다. 1915년 불세출의 스타인 루스가 합류해 더 강해졌다. 하지만 돈이 급했던 보스턴 구단주가 1920년 팀 최고 스타 루스를 양키스로 보내면서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루스는 양키스 이적 첫 해부터 홈런 54개를 때려내며 펄펄 날았다. 1923년엔 양키스타디움 개장 경기를 찾은 7만여 관중 앞에서 친정팀 보스턴을 상대로 구장 첫 홈런을 쳤다. 1932년 보스턴과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선 타석에서 배트를 들어 외야 관중석 한 곳을 가리킨 뒤 바로 그 방향으로 홈런을 날리는 '예고 홈런'의 위용도 뽐냈다. 루스의 이적과 활약 속에 사이가 갈라진 두 팀은 이후에도 엎치락뒤치락 전세 역전을 반복하며 끈질긴 혈전을 이어갔다.

지난 17일(한국시간) 저스틴 터너의 만루홈런 공을 잡기 위해 손을 뻗는 보스턴 팬들. EPA=연합뉴스

지난 17일(한국시간) 저스틴 터너의 만루홈런 공을 잡기 위해 손을 뻗는 보스턴 팬들. EPA=연합뉴스

두 팀 역사에 가장 치열하고 상징적인 명승부는 2003년과 2004년 월드시리즈 진출권이 걸린 AL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나왔다. 2003년의 승자는 양키스였다. 7전 4선승제 승부에서 3승 3패로 맞선 가운데 7차전이 열렸고, 양키스가 연장 11회 애런 분의 끝내기 홈런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궜다. 당시 보스턴 사령탑이던 그래디 리틀 감독은 팀을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이끌고도 경질됐다. 7차전에서 선발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교체 시점을 오판한 게 그 이유였다.

두 팀은 1년 후 같은 무대에서 다시 만나 또 7차전까지 승부를 끌고 갔다. 양키스가 먼저 3승을 따냈지만, 보스턴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당시 MLB 최고 소방수였던 마리아노 리베라를 이틀 연속 9회에 무너트렸고, 데이비드 오티스가 4차전 연장 12회말 끝내기 홈런과 5차전 연장 14회말 끝내기 안타를 각각 터트렸다. 6차전에서는 커트 실링의 '피 묻은 양말' 투혼이 이어졌다. 결국 보스턴은 7차전까지 잡고 MLB 포스트시즌 사상 첫 리버스 스윕을 완성했다. 월드시리즈에선 86년 만에 '밤비노(베이스 루스의 별명)의 저주'를 풀고 루스 이적 후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 19일(한국시간) 양키스와의 더블 헤더 2차전에서 7회 마운드를 내려오며 포효하는 보스턴 선발투수 브라이언 벨로. AP=연합뉴스

지난 19일(한국시간) 양키스와의 더블 헤더 2차전에서 7회 마운드를 내려오며 포효하는 보스턴 선발투수 브라이언 벨로. AP=연합뉴스

양키스와 보스턴은 그 후에도 여전히 만나면 으르렁거리고, 서로를 가장 꺾고 싶어 하는 맞수로 남아 있다. 팬들 역시 매번 물러설 수 없는 장외 신경전을 펼친다. 양키스 레전드 리베라의 '은퇴 투어' 때, 보스턴 펜웨이파크의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낸 장면이 유독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는 이유다.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양키스와 보스턴은 MLB 역사에서 가장 풍부한 이야기를 간직한 라이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뜨거웠던 '아버지의 날' 맞대결은 보스턴의 완승으로 끝났다. 보스턴은 19일 더블헤더 두 경기를 모두 잡고 3연전을 싹쓸이했다. 다만 두 팀 다 올 시즌 순위는 썩 좋지 않다. 양키스가 20일까지 지구 3위(39승 33패), 보스턴이 5위(38승 35패)다. AL 동부지구에 강팀이 몰린 탓에 보스턴이 5할 승률을 넘기고도 최하위로 처져 있다. AL 중부지구 1위인 미네소타 트윈스(36승 37패)보다 더 많이 이겼는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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