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현대자동차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의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 “불법행위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한 이후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퇴임 전 ‘알박기 판결’, 사실상 입법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판결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주장은 사법권 독립 및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한다”며 반박했다.

2010년 11월 17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울산 3공장을 점거하고 파업 농성을 벌였다. 이후 회사 측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판사 자격 없다" 맹비난에…대법원 "인신공격 말라"
논란은 지난 15일 ‘현대차 불법파업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시작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현대차가 ‘파업에 따른 피해를 배상하라’며 노조원 4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노조원 각각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정도를 종합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불법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에 공동 책임을 인정한 기존 판례에 비춰 기업에 입증 부담을 지운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심을 맡은 노 대법관을 향한 비난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노 대법관은 법관 자격이 없다”면서 “생산라인 점거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조합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 나왔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변호사단체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도 “대법원이 정의당이 발의한 ‘노란봉투법’ 논리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사법기관 본분을 망각하고 입법기관 도우미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법원 수뇌부는 적극 반박에 나섰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19일 입장문을 통해 “해당 판결과 주심 대법관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판결의 진의와 취지가 오해될 수 있도록 성급하게 주장하거나 특정 법관에 대해 과도한 인신 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오른쪽). 뉴스1
대법원도 이날 추가 해명자료를 내고 “이번 판결로 기업의 입증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다. 기존과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정치적 판결’이라는 지적을 반박한 것이다. 대법원은 과거 비슷한 사례에서도 기업이 파업에 가담한 피고(노조원)를 특정하고, 파업이 불법이었는지 위법성을 밝히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 등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파업한 노조원 사이에) 배상 책임 비율을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 제반 사정들을 감안해 재량으로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대법원 설명대로 ‘재량으로 판단한다’는 원칙이 사실상 기업의 입증 책임을 무겁게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이 노조원들의 책임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입증 자료가 필요할 수밖에 없고, 결국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노조원 지위와 역할 등을 따지는 것은 추후 뒤집히기 쉬운 논리”라고 말했다.
이 사건이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거쳤는지도 또 다른 논란이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적이 없다. 판례 변경 사안이 아니므로 소부에서 판결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중앙일보 취재 결과 관련 사건을 심리하던 전원합의체에서 사안의 핵심인 ‘개별책임 쟁점’이 논의됐다고 한다. 한차례 전원합의체를 거친 쟁점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