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보 전쟁의 시대, 국정원 일하도록 빨리 안정시켜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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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국가정보원을 찾아 202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기에 앞서 국정원 원훈석 앞에서 간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국가정보원을 찾아 202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기에 앞서 국정원 원훈석 앞에서 간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원장 지근거리 측근의 1급 인사 전횡 의혹 잡음

‘정치 외풍’ 없는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나아가야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던 인사가 번복되면서 불거진 인사 잡음으로 국가정보원이 뒤숭숭하다. 김규현 국정원장이 검토를 마친 국정원 1급 대상자들의 인사안을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윤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지만 나중에 문제점이 발견되자 이를 무효로 했다는 게 골자다. 고위직인 1급 5~7명의 인사를 하면서 김 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측근이 승진 인사에 포함됐고, 승진 대상자 선정에 입김을 크게 행사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인사를 재가했던 윤 대통령이 어떤 경로로 관련 내용을 파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익만 바라보는 헌신과 실력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해야 할 국정원의 인사가 원장 측근 1인에 의해 좌우된 정황이 포착됐다고 하니 사실이라면 큰 문제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의 원훈(院訓)이 무색하다. 인사를 ‘전횡’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내부의 제어가 없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국내 파트를 없애고, 변호사를 대거 고용해 자신들이 추진하는 업무가 법에 어긋나는 게 없는지 매번 따져 보겠다며 개혁을 다짐해 왔던 국정원이 아니던가.

지난해 10월 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던 조상준 전 기조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표를 내면서 국정원 내부 갈등설이 불거졌고, 이번 사태의 예고편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인사 취소로 생길 업무 공백이 우선 걱정이다. 세계는 ‘정보와의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하루가 다르게 정보기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간첩 잡는 일(방첩)로 대표되던 과거의 국정원은 사이버 공격을 막아내는 정보전의 첨병이자 산업스파이를 찾아내는 등 할 일이 크게 늘었다. 당장 한국의 반도체 등 앞선 기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은 발등의 불이다. 동지도, 적도 없는 외교전에서 정보 수집과 막후 조율도 보이지 않는 국정원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국정원이 하루빨리 인사 후폭풍에서 벗어나 본연의 사명과 역할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다.

동시에 이번 사태를 국정원이 국익만 생각하는 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를 위해 소리 없이 헌신하겠다”는 게 국정원의 직원 헌장이다. 국정원 스스로도 개인의 영달에만 집착하거나 정치 외풍에 휘둘린다면 ‘정권의 정보기관’이라는 오명을 떨치기 어렵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기관을 ‘손보는’ 악습의 반복도 끊어야 한다. 수십 년을 음지에서 활동한 정보맨이 정권교체라는 이유만으로 짐을 싼다면 국익 차원에선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보기관만큼은 정치색을 버릴 수 있도록 기관장 임명에 신중하고, 직원들이 ‘정치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일할 여건을 만들어 주는 건 바로 정치의 몫이어야 한다. 그게 ‘국민의 정보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