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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법, MBC 이상호 기자 'X파일' 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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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법원이 검찰의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지난해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을 보도한 언론 매체는 모두 '유죄'라고 선언했다. 이는 해당 사건에 대해서만 심리하고 판결하는 법원의 관행을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김용호 부장판사)는 23일 도청 테이프 내용을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MBC 이상호(38) 기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를 인정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언론에 취재원 접근 및 정보 공표의 자유가 있음에도 통신비밀보호법이 도청 행위와 이에 따른 내용의 공개 및 누설을 처벌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도청의 폐해를 원천 봉쇄하고 통신비밀을 강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할 재판에서도 불법 수집된 도청 자료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규정한 것은, 불법 도청 산물은 당초부터 존재해선 안 된다는 입법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형사소송법의 독수독과(毒樹毒果.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 이론은 예외없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특히 "이 때문에 통비법이 정한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당시 보도에 참여한 대한민국 모든 언론 매체의 보도.출판 행위는 통비법을 위반한 유죄임을 선언한다"며 "이 기자에게도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당시 보도가 이 기자의 단독결정이 아닌 방송국의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이뤄진 점 등을 들어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형의 선고는 유예했다. 재판부는 또 "특종을 위한 공명심이 아닌, 역사적 사명감으로 불법 도청 내용을 보도했다"는 이 기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양형 참작 사유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연광(44) 월간조선 편집장에 대해서는 검찰과 피고인 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선고유예한 원심을 유지했다.

민동기 기자

◆ 선고유예=유죄는 인정되지만 처벌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법원이 형의 선고를 일정 기간(2년) 미루는 것. 유예기간 중 자격정지 이상의 형에 처해질 경우 유예된 형이 다시 선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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