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 한솔동의 한 중학교 1학년 교실의 모습. 뉴시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급증하면서 남는 예산을 쌓아둔 교육청 기금이 22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대부분 교육청이 기금을 이자율이 낮은 예금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조원 기금 굴려 이자수익 599억원

김현서 디자이너
14일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를 통해 받은 ‘시·도교육청별 기금 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지난해 이자수입 결산 기준으로 8조6130억원의 기금을 운용했다. 정기예금이 75.4%로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신탁(24.6%)이었다. 만기 도래 후 새로운 상품에 재예치한 경우를 포함해 8조원이 넘는 금액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599억원에 그쳤다. 이는 대부분 교육청이 이자율이 매우 낮고 가입 기간도 짧은 예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예금은 원금 보장 측면에서 가장 안정적인 기금 운용 방식으로 꼽히지만 교육청들이 가입한 대부분 정기예금은 약정 이자율이 평균 수신금리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 10월에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 1000억원을 농협은행에 0.74% 이자율로 1년간 정기예금으로 예치했는데, 당시 한국은행이 공시한 1년 만기 정기예금 수신금리는 1.46%였다. 같은 해 12월 한국은행이 공시한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수신금리는 1.79%였지만, 강원도교육청은 재정안정화기금 3143억원을 1.25%의 약정 이자율로 1년간 예치했다. 이처럼 지난해 수익이 발생했던 정기예금 153개 중 134개(87.5%)가 가입 당시 한국은행이 공시한 정기예금 수신금리보다 낮았다.
안정적인 기금 관리와 수익 극대화 사이 딜레마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교육청은 사용하고 남은 예산을 ‘재정안정화기금’,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 등의 명목으로 적립해둔다. 세수 불황으로 교부금이 급감하거나 학교 리모델링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때를 대비한 일종의 ‘여윳돈’인 셈이다. 이러한 기금의 규모는 2018년까지만 해도 4763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2조원을 돌파하면서 안정적인 기금 운영과 더불어 이자 수익 문제가 큰 과제로 떠올랐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기금 규모가 커지다 보니 이자율 0.1%만 달라져도 수익 차이가 어마어마해져서 고민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기금을 운용하는 실무자들은 안정적인 원금 보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막대한 기금을 가지고 왜 적극적으로 이자 수익을 창출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외부에서 꾸준히 제기되지만 안정적인 기금 관리가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에 이자율이 높지 않아도 교육청과 계약을 맺은 은행 금고를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부산교육청(부산은행)을 제외하면 모두 농협을 교육청 금고로 사용 중이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금고 입찰 공고를 낼 때마다 농협만 단독 응찰을 하기 때문에 수의계약을 하는 실정이다”며 “은행끼리 경쟁을 해야 금리가 높아질텐데 농협이 제시하는 낮은 금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김현서 디자이너
이자 수익을 높이려고 하다가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지방의 한 교육청은 지난해 말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 300억원을 지수연동형예금 상품에 예치했다가 의회에서 지적을 받았다. 교육청 관계자는 “의회에서 이자 수익이 낮다고 해서 전문가 자문을 받아 고금리 상품에 가입했더니, 이번에는 원금 보장이 불확실하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해도 욕을 먹으니 혼란스럽다”고 했다.
물가상승 고려하면 원금보장이 손실
전문가들은 물가상승과 세수불황으로 인한 교부금 감소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기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원금보장에만 치중하는 건 인플레이션을 고려했을 때 손실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결국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쓸 돈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국채 투자나 연기금 투자풀을 활용하는 등 안정적으로 이자수익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금의 재원을 교육청이 직접 만들었다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지만 가만히 앉아있어도 들어오고 남는 돈이기 때문에 원금 보장 외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라며 “쓸 곳이 없으면 차라리 중앙 정부에 되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