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며 스타트업 활성화에 공을 들였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신생 기업인 유니콘 기업은 2017년 3개에서 2021년엔 역대 최대인 18개로 늘어났다. 스톡옵션으로 수많은 영앤리치가 탄생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는 뉴스는 뉴스도 아니었다. 제2의 벤처붐이었다. 사회 전반에 혁신 에너지가 가득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입장에서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도저히 지지할 수 없는 ‘반(反) 스타트업’ 정당이었다. 그 중심에는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줄여서 을지로위원회가 있다.
을지로위원회, 점차 세상을 이분하고 ‘갑’을 적대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2013년 남양유업 본사의 가맹 대리점 갑질을 해결하면서 탄생했고 각종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해결해 나갔다. 기업에서도 을지로위원회의 갈등 조정이 협상에 도움이 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을지로위원회는 상법상 불공정한 갑‧을 계약 문제를 넘어, 세상을 기업인 ‘갑’과 노동자인 ‘을’로 이분하고 ‘갑’을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그 사례를 보자.
2020년 1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참여연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등과 함께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과 요기요(딜리버리히어로)의 기업결합에 대해 독점이 우려된다며 공정위의 공정한 심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내 스타트업의 최대 규모 엑시트(Exit)를 여당이 반대한다는 비판이 일자, 을지로위원회는 반대가 아니라 공정한 심사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을지로위원회가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반기업 표심에 구애한 것이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기업가치를 현금화하는 엑시트는 단순히 막대한 부의 획득을 넘어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힘이고, 창업의 원동력이자 자아실현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다. 엑시트 방법엔 기업공개나 상장뿐만 아니라 지분매각(M&A)도 있다. 을지로위원회가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하는 원천인 엑시트를 막겠다고 하니, 민주당을 반 스타트업 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혁신 가로 막는 타다금지법에 앞장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20년 3월 6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홍근 의원이 주도한 타다금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옛 여객운수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타다 관계자들이 2020년 2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상황이었다. 타다금지법은 발의부터 국토교통위원회, 법사위, 본회의 통과 직전까지 반대 여론이 매우 높았다. 무작정 혁신 산업을 막고 기득권 산업의 손을 들어주면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타다금지법 이후 밤늦게 택시가 안 잡혀 근처 모텔에서 자는 일이 벌어지는 등 택시 대란이 일었다. 택시업계, 소비자, 혁신기업 모두가 피해를 봤다. 그리고 4년간 재판 끝에 2023년 6월 대법원은 타다가 유상 운송을 금지하는 옛 여객운수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무죄를 확정했다. 타다금지법 입법 자체가 무리수였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선 단골 증인인 대기업 총수가 빠지고 플랫폼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대거 증인으로 신청됐다. 국회는 카카오 김범수 의장, 쿠팡 강한승, 야놀자 배보찬, 배달의 민족 김범준 대표를 불렀다. 이들의 국감 출석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앞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9월 7~10일 ‘플랫폼경제 을들과의 연속 간담회’를 통해 국감 과제를 도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은 그대로 국감 증인이 됐다. 한마디로 반 플랫폼의 선봉에 을지로위원회가 있었다. 이런 사례는 2030세대에게 을지로위원회가 반 플랫폼·반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거대 노총의 민원 해결하며 밀착...기업과는 멀어져
을지로위원회가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바로잡는 일에서 반기업으로 급속히 기운 이유는 뭘까? 2014년 을지로위원회는 태스크포스(TF) 성격의 특별위원회에서 전국청년위원회 같은 전국위원회로 승격됐다. 더 많은 고유 업무가 필요해지며 자연스럽게 양대 노총의 민원을 과제로 삼았다. 을지로위원회와 양대 노총은 공동 기자회견, 공동 간담회·세미나를 수시로 열었다. 점차 ‘민주당·양대 노총 대 기업’ 구도가 만들어졌고, 을지로위원회는 더욱 기업과 멀어지게 됐다.
을지로위원회의 존재 가치는 분명히 있다. 다만 양대 노총과 함께 노동 분야 의제까지 담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민주당 당헌상 노동계를 상대하는 조직은 전국노동위원회다. 더구나 현재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현직 한국노총 금융노조 위원장이 맡고 있다. 노동계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는 구조다. 전국노동위원회가 해야 할 업무를 민주당 절반에 가까운 77명의 국회의원을 둔 을지로위원회까지 나서는 것은 당내 의제 설정 시스템의 균형을 깨는 일이다.
운동권 야당 방식으론 국민 지지 못 받아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민주당(14년)은 국민의힘(10년)에 비해 더 많은 기간을 집권했다. 그래서 20·30세대에게 민주당은 ‘만년 야당’이라는 인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권 야당처럼 사회를 갑과 을, 기업과 반기업, 부자와 서민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경제와 노동, 외교 분야에서 균형감 있고 안정적인 집권당처럼 행동할 때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다.
여선웅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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