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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감사 한정 수용”…60년 역사 첫 감사지만 “반쪽” 비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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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직무 감찰)를 거부하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9일 감사원 감사를 한정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전면 거부’ 입장을 일주일 만에 뒤집으면서 선관위는 1963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회계 감사가 아닌 직무 감찰을 받게 됐지만 여권이 그동안 요구하던 전면 수용은 아니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노태악 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들은 이날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에서 4시간 가까이 회의를 진행한 끝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날 회의는 원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사임한 송봉섭 전 사무차장의 후임을 뽑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위원들 사이에서 “감사 수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장시간 토론이 진행됐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회의 후 노 위원장은 별도의 브리핑 없이 회의장을 나갔고 선관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선관위 내부 문제로 국민께 심려 끼쳐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최근 발생한 자녀의 특혜 채용 문제에 대해 국민적 의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하여 감사원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감사 수용은 어렵다는 것이 선관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감사를 전면 거부했던 지난 2일 회의 때와 달리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선관위는 그동안 ‘헌법적 관행’이란 점을 내세워 감사원 감사를 거부해왔다. 지난해 3·9 대선 사전투표 때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노정희 전 위원장과 김대년 전 사무총장이 물러나는 상황에서도 감사를 불수용했고, 이번에 자녀 특혜 채용 의혹 연루자가 전·현직 11명으로 불어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감사 불가 입장을 고수했었다.

그러나 악화된 여론을 결국 극복하진 못했다. 선관위가 버티는 사이 각종 의혹은 줄을 이었다. 9일 정우택 의원실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부친의 선관위 근무 사실을 대놓고 밝힌 사례도 새로 드러났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인천 선관위에 2011년 7급 경력직으로 채용된 정모씨는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신다”고 쓴 뒤 면접위원인 부친의 직장 동료들로부터 5개 평가 항목 중 4개에서 ‘상(上)’을 받아 합격했다.

선관위는 이처럼 이날 기존 입장을 다소 후퇴시키면서도 “행정부 소속 감사원이 헌법적 독립기관인 선관위 고유 직무를 감사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재확인했다. 그러고는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번 감사 일부 수용이 앞으로 감사원 감사를 일상적으로 받게 되는 선례가 되지 않게끔 확실하게 선을 그어놓겠다는 의도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을 뒤로 한 채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을 뒤로 한 채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그동안 전면적인 감사 수용을 요구하던 국민의힘은 선관위 결정 직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 모여 선관위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윤재옥 원내대표는 “전면적인 감사를 거부하고 특혜 채용 문제에 대해서만 감사를 받기로 한 반쪽짜리 결정”이라며 “선관위가 보여준 태도는 자성도 없고 쇄신도 없는 국민 무시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정부·여당은 선관위를 압박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야욕을 버리라"며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감사원이 법에도 없는 권한을 남용하면 민주당은 감사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선관위와 갈등하던 감사원은 일단 선관위가 부분적으로나마 감사 수용 입장을 밝힌 만큼 따로 수사 요청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부분 수용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감사 범위는 감사원에서 정한다”며 “구체적 감사 계획은 이르면 내주 중에 밝히고 감사도 서둘러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경우에 따라 감사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비친 것이다.

신임 사무차장은 허철훈 서울선관위 상임위원

이날 선관위원 회의에서 허철훈(58) 서울선관위 상임위원을 신임 사무차장(차관급)으로 임명했다. 허 신임 사무차장은 강원 영월 출신으로 ▶선거국장 ▶감사관 ▶선거정책실장 등 중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박찬진 전 사무총장의 후임은 향후 외부 인사 중에서 발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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