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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野대표 면전서 15분 일장연설…"이재명, 중국에 말려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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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대표를 초청해놓고선 정작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낸 주한 중국대사의 이례적인 행태에 정치권이 9일 종일 술렁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와 싱 대사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 마련 방안, 양국 간 경제협력 및 공공외교 강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 김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표와 싱 대사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 마련 방안, 양국 간 경제협력 및 공공외교 강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 김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 서울 성북구 중국 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邢海明) 중국대사와 2시간가량 만찬을 했다. 한·중 관계 등을 두루 논의한다는 취지였으나, 싱 대사는 시작과 동시에 사전에 준비한 A4 5장 분량의 원고를 꺼내 15분 동안 읽으며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난했다. 싱 대사는 “중국 패배에 베팅은 오판”이라는 취지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전날 만찬 발언이파문을 일으키자 외교가와 정치권은 즉각 반응했다. 외교부 장호진 1차관은 이날 오전 싱 대사를 초치해 전날 발언을 도발적인 언행이라 규정하고 "내정간섭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도 "내정간섭이자, 삼전도의 굴욕을 연상케한다"는 격한 반응을 내놨다.

정작 싱 대사의 도발적 언행을 면전에서 들었던 이 대표는 이날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어제 경색된 한·중 간의 경제 협력을 복원해서 대중 교역을 살려내고 경제 활로를 찾기 위해 중국 대사를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자평했다. 싱 대사 발언만 부각되면서 이 대표의 후쿠시마 오염수 공동 대응 요청 등이 주목을 덜 받았지만, 이 대표는 기자들에게 “경제, 안보 문제 등 할 이야긴 충분히 했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야당 대표를 관저로 초청해 15분간 정부 비판 일변도의 발언을 쏟아낸 것이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개 관저에서 열리는 행사에선 덕담을 주고받는 친교 성격의 발언이 오가기 때문이다. 실제 “양국 관계 악화 책임이 중국에 있지 않다. 한국 정부의 탈(脫) 중국화 시도가 문제”,“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 중의 핵심이고 중·한 관계의 기초” 같은 싱 대사의 발언이 이어지자 이 대표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는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외교가를 잘 아는 민주당 한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굉장히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 (어제 회동을) 활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참모 출신 의원은 “문제의 본질은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강하게 표출됐다는 점”이라면서도 “해당 발언이 비공개에서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뉴스1

외교가에선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4월 24~29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5월 19~21일) 정상 회의 참석 등으로 한·미·일이 밀착해가자,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려는 중국 측의 의도에 민주당이 말려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싱 대사는 지난달 26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솔직히 현재 중·한 관계가 좋지 않다. 더 낮아질 위험도 있지 않을까 우려한다”면서 “그 원인과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여론전을 펼치는 중이다.

싱 대사는 전날 만찬이 비공개로 전환된 자리에서도 “미국은 말로는 중국에 대해서 세게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물밑에서 경제 교류 등의 만남이 활성화돼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결과적으로 한국 측이 하고 싶은 얘기는 묻히고 일방적으로 중국의 우려만 듣고 온 셈이 됐다”며 “중국이 바라는 게 여론전과 심리전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디테일하게 사전 조율을 하는 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제7차 전국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제7차 전국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선 이 대표와 싱 대사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명백한 내정간섭으로, 외교적으로 심각한 결례를 한 싱 대사에 대해 강력히 유감 표명을 한다”며 “싱 대사가 작심한 듯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하는데도 이 대표는 짝짜꿍하고 백댄서를 자처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싱 대사가 마치 구한말 우리나라에 왔던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처럼 막말을 쏟아냈다”며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이 대표가 맞장구를 쳐가면서 공동 대응 운운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국 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두 사람의 회동에 대해 “마치 청나라 앞에 굴복했던 삼전도의 굴욕마저 떠올리게 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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