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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총선 출마설 묻자 "국가 위해 할 역할 있나 생각 중" [박성우의 사이드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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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레이저 눈빛’은 없었다. 수감됐던 구치소 독방은 복도 맨 끝에 있어 유독 추웠다고 했다. 지난해 말 신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우병우(56·사법연수원 19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가를 위해서 내가 할 역할이 뭐가 있을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 출마설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이었다.

국정농단의 ‘방조자’로 지목돼 기소된 우 전 수석은 항소심에서 일부 사찰 등과 관련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만 인정돼 2021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복권 후 지난 2월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 로펌들의 영입 제안도 있었지만 개인 사무실을 냈다. 지난 5일 그를 서울 반포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의뢰인의 발길은 뜸해 보였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5일 서울 반포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5일 서울 반포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청와대 나오신 뒤 첫 인터뷰 아닌가요.
저는 인터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과거에 누가 식사 한번 하자고 해서 점심 먹었는데 거기서 말한 걸 기자가 가져다 쓴 적은 있죠.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사받고 재판받고 사실상 한 6년 동안 사회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무실 하나 열어놓고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활동을 활발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주변 분들 도와주는 정도.
세간의 관심은 내년 총선 출마에 쏠려 있습니다.
출마하라는 전화도 많이 오고, 또 요즘 평소에 알던 사람들 만나도 항상 그것부터 물어보고 그럽니다. 하지만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보다는 그래도 평생 공직에 있었으니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뭘까를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향 경북 영주가 출마지로 거론되는데요.
거기까지 하시죠(웃음). 영주에서도 그렇게 저한테 자꾸 ‘자백’을 받으려고 하는데, 영주 사람들한테도 거기까지만 얘기해요. 말이라는 건 한 번 해놓으면 지켜야 되는 것이지, 한번 말했다가 뒤집고, 떠보고 하는 건 제 성격과 안 맞기 때문에….    
정치를 한다면 왜 하려고 하는지 궁금한데요.
그건 굉장히 가정(假定)의 가정이라 답을 하기가 이상한데…
국가를 위해서 뭘 할지 생각 중이시라면서요.
정치에 한정해서 한 말은 아니고요. 예전에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저한테 어떤 국회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존경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박 전 대통령 존경하는 이유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라고 답변 드린 것으로 기억해요.  

우 전 수석은 청와대 근무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밤 11시, 이른 아침, 주말 가릴 것 없이 자신이 올린 보고서를 보고 수시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국가에 대해서 저렇게까지 헌신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우 전 수석의 기억이다. 정치를 하건, 다른 방식으로 국가에 봉사하건, ‘진정성’이 키워드라는 얘기로 들렸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5일 서울 반포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5일 서울 반포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돌이켜보면 이런 점은 그래도 잘했고, 이런 점은 좀 더 잘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나요.
개인적으로 잘했냐 못했냐 하는 것보다 국정농단 사태라는 게 결국 대통령을 탄핵하고 주변 사람들을 형사 처벌한 것이잖아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둘 다죠. 그 사건 자체는 끝났지만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죠.  

비교적 단답형이던 우 전 수석의 대답이 이 대목에서 갑자기 길어졌다. 목소리도 커졌다.

그때 제일 많이 적용한 혐의가 ‘직권남용’이잖아요. 사법부에까지 적용됐는데, 그 전엔 직권남용죄 처벌례가 거의 없었어요. 예컨대 오늘 내가 한 이러이러한 행위를 정권이 바뀌거나 상당 시간이 지난 다음에 ‘야, 그때 그게 부당한 거야’ 이렇게 판단하는 일이 생긴 겁니다. 검사나 판사가 몇 년 뒤에 내가 한 일이 ‘부당하다’고 하면 범죄자가 되는 거죠. 어떤 공무원이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겠어요. 지금 그 부작용으로 인해서 우리 헌법이 상정하는 행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고 풀어야 하는 게 국가적 숙제라고 생각해요.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최근에 소통한 적이 있나요.
지금 (경북) 달성에 계시잖아요. ‘아직은 건강이 안 좋고 건강이 회복되면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분들 만나겠다’ 그런 전언이 있었죠. 꼭 제가 만나고 안 만나고 떠나서 대통령께서 빨리 건강을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찰 공화국’이라고들 합니다.
진짜 그런가요. 검사들이, 검사 출신들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하고 있나요 지금? 운동권이면 운동권이 많이 하고, 군사 정권 땐 군인들이 많이 하고 그랬잖아요. 저는 공직자는 그렇게 사람을 출신으로 딱 규정을 해버리고 ‘너는 어디 출신’이라고 낙인 찍으면 안 된다고 봐요. 저는 인사 검증을 해봤잖아요. 사람이 같은 출신이면 다 똑같나요? 물론 자꾸 이렇게 검찰이 언급되는 건 검찰의 존재 이유나 목적에 비춰봐서 지금 검찰에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게 절대적으로 잘 됐다 잘못됐다 할 일은 아니고 공직자로서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요.

경북 영주고를 졸업한 우 전 수석은 같은 경북이라도 경북고 등 이른바 ‘TK 주류’에 대해 소외감을 가져왔다. 한 검찰 선배는 그런 우 전 수석에게 “차라리 강원도 출신이라고 해라”라고 조언해 줄 정도였다. 이처럼 우 전 수석은 ‘출신’을 따지는 것에 민감한 편이다.

검찰 출두 때 포토라인에서 ‘레이저 눈빛’을 쏴서 화제가 됐어요.
언론에서 그렇게 만든 건데… 좀 그렇지 않아요? 사람 눈빛을 가지고 ‘네 눈빛은 좀 기분 나쁜 눈빛’이라니. 검사할 때 저녁에 싸운 사람들 공소장 쓰다 보면 경찰에서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이렇게 올라와요. 그게 저 사람 눈빛은 기분 나쁜 눈빛이고, 이 사람 눈빛은 선한 눈빛이라고 따로 규정이 돼 있나요. 돈을 받아먹었다든지, 누구를 어떻게 했다든지 그런 게 없이 ‘레이저 눈빛 쏘니까 나쁜 놈이다’ 그런 걸로 공격하고… 그때는 그게 하나의 정치적인 프레임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병우 사단’은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그것도 언론에서 만든 용어잖아요. 나조차도 우병우 사단이 누군지 몰라요. 어떤 후배가 ‘저도 이번에 우병우 사단이라고 지목당해서 불이익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 니도 우병우 사단이구나’ 이렇게 아는 거지. 일반 형사부도 그렇지만 특수부에서 일 같이 오래 하면 고생을 많이 하잖아요. 정이 드는 거죠. 

384일 동안 구치소에 있으면서 스피커에서 자주 나오는 트로트곡 ‘안동역에서’를 듣고 흥얼대며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탄핵과 처벌에 대한 ‘복수’보단 사회가 안게 된 상처의 ‘치유’에 쏠려 있었다. 한국 사회 당면 과제를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사회 분열”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안이든 가부(可否)가 아니라 네 편, 내 편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느냐”면서 “탄핵의 상처 극복과도 관련있는 문제다. 민주주의 시스템,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공직시절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는 2006년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재직 당시 시각장애인이 사법시험을 점자 대신 음성형 컴퓨터로 치를 수 있도록 바꾸고, 시험시간을 최대 두 배로 늘린 일을 꼽았다. “서울맹학교를 직접 방문해 찾아낸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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