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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편파방송 반성은 없이 자리 흥정만 하는 KBS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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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의철 KBS 사장이 8일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김 사장은 정부가 수신료 분리 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자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김의철 KBS 사장이 8일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김 사장은 정부가 수신료 분리 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자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전임 정권 사장 문제라면…” 분리징수 문제 정쟁화

편향·왜곡 보도로 공영방송의 역할 저버린 게 본질

김의철 KBS 사장이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철회하면 자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제가 사장직을 내려놓겠다”면서다. 정파성에 치우친 왜곡·편향 방송, 방만 경영 등에 대한 자성 없이 분리징수 문제를 정치적 다툼으로 몰아가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마치 자신을 사퇴시키기 위해 정부가 트집이라도 잡고 있는 양 ‘자리 흥정’을 하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지난 5일 대통령실은 전기요금과 통합징수하는 KBS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했다. ‘국민참여토론’을 통해 여론을 수렴한 결과, 징수 방식 개선을 추천하는 의견이 97%에 달했다는 것이 근거가 됐다. 통합징수가 폐지되면 현재 연간 6200억원 정도인 수신료 수입이 1000억원대로 급감할 것이란 게 KBS 측 추산이다. 김 사장은 이날 “공영방송의 근간이 흔들리는 중차대안 사안”이라고 말했지만, 이를 범사회적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다. 그동안 특정 정파 편들기로 국론 분열을 앞장서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온 KBS의 자업자득적 측면이 강하다.

5월 18일 방송된 KBS '뉴스9' 방송 화면과 KBS 홈페이지 다시보기 화면 캡처. 이소정 앵커의 의상이 바뀌어 있다. 사실과 다른 앵커 멘트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해당 부분 영상을 다시 녹화해 사전 고지 없이 교체한 것이다. [사진 KBS노조]

5월 18일 방송된 KBS '뉴스9' 방송 화면과 KBS 홈페이지 다시보기 화면 캡처. 이소정 앵커의 의상이 바뀌어 있다. 사실과 다른 앵커 멘트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해당 부분 영상을 다시 녹화해 사전 고지 없이 교체한 것이다. [사진 KBS노조]

최근 사례만 봐도 지난달 18일 KBS ‘뉴스9’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박2일 노숙 집회의 불법성 논란을 다룬 뉴스를 보도하면서 “경찰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사실과 다른 앵커 멘트를 했다. 이후 문제가 제기되자 사전 고지 없이 다시보기 영상을 교체해 ‘오보 은폐’ 의혹까지 불거졌다. 지난달 31일에도 한국노총 금속노련 간부의 고공 농성 장면을 보도하며 노조원의 정글도·쇠파이프 사용 정황은 간과한 채 경찰의 ‘강경 진압’만 강조했다.

또 보직 없이 억대 연봉을 받는 직원이 전체의 30%(1500명)에 이를 정도로 방만 경영 문제가 심각한데도 본질적인 쇄신 노력 없이 지속적으로 수신료 인상만을 추진해 국민의 반감을 키웠다. 수신료를 받으면서도 광고 수익까지 올리는 기형적 재원구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KBS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혁신안을 내놓지 않으면 수신료 분리징수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매체 시대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과 공정 방송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KBS 개혁의 초점이 돼야 한다. 물론 정치권 역시 수신료 문제를 방송 길들이기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될 것이다. 2017년 분리징수 방안이 포함된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이 8일 “분리징수로 인한 공영방송 황폐화, 방송산업 침몰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함을 명심하라”는 성명을 내놓은 것도 낯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