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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지난 3년 코로나 사망자보다 자살자가 더 많았다

중앙일보

입력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최근 한국의 자살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사실과 함께 여성 자살률이 느는 추세를 지적했다. 자살률 통계를 보면 해외 언론이 한국에 주목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공개한 국제 자살 통계(2020년 기준)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1명으로 2위인 리투아니아(20.3명)와 3위인 슬로베니아(15.7)보다 한결 높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는 더 적나라하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12위다. 우리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는 레소토·가이아나·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란드)·키리바시·미크로네시아연방·수리남·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중앙아프리카공화국·러시아뿐이다.

여성 자살률 전 세계 4위
 여성 자살률은 훨씬 심각하다. 13.4명으로 세계 4위다. 레소토·가이아나·짐바브웨 여성들만 한국보다 자살이 많다. 출산율은 OECD 꼴찌인 0.78명인 상황에서 자살률은 1위를 지키고 있으니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자살의 심각성은 코로나19와 비교하면 더 확연하다. 사상 최악의 감염병인 코로나19의 경우 2020년 1월 20일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2022년 말까지 3만 2156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2020~22년 자살로 숨진 사람은 3만 9267명이다(※2022년 1만 2720명은 잠정치). 다른 나라와 비교하거나 국내 수치를 분석해도 자살이 얼마나 중대한 국가적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열고 ‘제5차자살예방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2027년까지 자살률을 30% 줄이겠다”며 OECD 1위 탈출 계획을 제시했다. 생명존중안심마을을 조성하고 교량 등 자살 다빈도 장소를 관리해 자살위험요인을 줄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2020~22년 코로나 사망자는 3만 2156명, 자살자는 3만 9267명
정부 “5년 간 자살률 30% 감축” 발표, 5년 전 문재인 정부 데자뷔
부처 간 데이터 공유 미흡하고 해외 SNS엔 자살 유발 콘텐트 난무

‘2022년 8727명’ 약속은 어디로
 하지만 92개에 이르는 세부 과제를 담은 계획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5년 전 장면이 겹쳐진 탓이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2022년까지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 사망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향후 5년간 2016년 대비 자살자 수 30%를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이 되면 자살자 수는 8727명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해 한국은 리투아니아와 차이를 크게 벌리며 확실한 1위가 됐고, 지난 정부 내내 1위를 유지했다. 30% 감축은커녕 1만 명 근처로도 못 내려왔다. 8727명이 된다던 2022년 자살자 수는 잠정치가 1만 2720명에 이른다. “5년 동안 30% 줄이겠다”는 윤석열 정부 발표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정권은 바뀌었어도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교육부 등 연관 부처는 5년 전과 같다.

 이번에 발표한 과제들이 실효성은 있는 것일까. 현장을 찾아가 봤다. ‘자살위험요인 감소’ 항목엔 교량 등 자살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를 지속해서 관리하는 내용이 담겼다. 자살 수단 가운데 ‘추락’이 18.6%를 차지해 두 번째로 많다. 추락 위험 요인을 줄인다면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24일 정오쯤 인천국제공항 인근의 인천대교를 찾아갔다. 5분쯤 차로 달리니 줄지어 선 주황색 플라스틱 드럼통이 나타난다. 인천대교 측이 자살을 막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이다. 이 통을 설치한 구간에선 실제로 방지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자살이 주로 발생하는 다리 중심부에 차를 세우기 어렵게 만든 조치가 변화를 불렀다는 추정이다. 길이가 21㎞에 이르는 인천대교는 걸어서 중심부로 접근하기 어렵다.

 자살 시도자가 다리 중간에 정차할 때 비상등을 켜는 현상을 관리자들이 주목했다. 한 관계자는 “비록 삶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에 온 사람이라고 해도 고속으로 달려오는 뒤차에 추돌당하는 사고만큼은 피하고 싶어 한다는 심리를 파악했다”고 말했다. 통이 늘어선 지점에 차를 세우면 차 왼쪽이 주행 차선 일부를 침범하게 되면서 정차가 어려워졌다. 해당 구간에서 실제로 자살자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포대교 투신자 대부분 구조
 자살 시도가 가장 많은 장소로 꼽히는 서울 마포대교에 가보니 자살 방지 시설은 두 가지 형태였다. 일부 구간은 난간 펜스를 사람 키 정도로 높여 넘어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구간엔 높이를 더 올리고 와이어를 연결했다. 손으로 잡는 윗부분은 롤러를 설치해 매달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투신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나타났다.

 119 수난구조대에선 물에 빠진 뒤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4분으로 본다. 방지 시설로 인해 투신이 지연되면 그사이 신고를 받은 구조대가 보트를 타고 신속히 도착해 투신자를 구조할 확률이 커진다. 구조대 관계자는 “투신한 사람은 한동안 수면 부근에 떠 있다가 가라앉는데 물 밑으로 내려가면 살리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마포대교에 시설물을 설치한 이후론 골든타임 내 도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마포대교에선 자살 시도자가 뜻을 이루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자살 위해 수단에 대한 접근 제한은 국내외 많은 연구에서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며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중요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미국 금문교 하부에 그물을 설치한 게 대표적이다. 공주대교와 광안대교를 비롯한 전국 곳곳의 교량에 투신방지 시설을 설치하는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문제는 비용이다. 많게는 100억원 이상 드는 다리도 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가 2020년 한양대에 연구를 의뢰한 결과 “지자체별로 교량 자살방지시설 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권고안을 제시해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처음 설계할 때 반영하면 예산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다리가 준공 이후 추가 공사를 진행해 예산에 부담이 되고 있다.

규제 소용없는 외국계 SNS
 정부가 제시한 ‘자살 유발 정보 관리 강화’ 역시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난다. 최근 자살 생중계가 파장을 불렀지만, 여전히 자살 동반자를 모집하는 내용이 버젓이 SNS에 올라온다. 자살 방법을 그림으로 상세히 설명한 콘텐트도 있다.

 특히 외국계 SNS가 자살 유발 정보의 온상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국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절차를 거쳐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는 상당 기간이 소요돼 실효성이 떨어진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SNS 등에 나오는 자살 유해 콘텐트에 대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며 트위터에서 찾은 자살 관련 게시물을 제시했다.

 지난 정부의 약속과 달리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현 정부는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위원장 김한길) 산하에 ‘자살 위기극복 특위’를 구성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종우 경희대 의대 주임교수(정신건강의학교실)는 “대통령 직속으로 특위를 만든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윤석열 정부는 다를까
 한지아 특위 위원장(을지의대 교수)은 세대별로 차별화한 대책을 제시한다. WHO에서 정신보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위원장은 “한국은 노인 자살률도 OECD 1위로 심각한 상태”라며 “WHO가 2015년 제시한 ‘건강 노화’ 개념을 적용해 노인이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과 청년 자살도 날로 악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자살률이 하향 추세임에도 젊은 층 자살은 늘고 있다.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서울 강남에서 고교생이 자살한 일이 있었는데 책상을 어떻게 할지 등 후속 대처 전반에 문제가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모른다는 얘기다.

 5년 전부터 통합 대응을 약속했지만, 정부 부처 간 데이터 실시간 공유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경찰청의 변사수사기록, 교육부의 학생자살통계,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 등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데이터를 신속하게 확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자살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한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였으나 정부의 노력으로 자살자를 크게 줄인 핀란드를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대 초반까지 교통사고 사망률이 OECD 국가 중 1위였으나 경찰의 전방위 단속으로 대폭 줄인 선례가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글 = 강주안 논설위원 그림 = 안은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