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색한 남매(?)사이, 친해지길 바라
어릴 적부터 듬직하고 의젓한 개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로망, 그 꿈을 실현하려면 그럴듯한 핑계가 필요했습니다. 개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맞을 것 같은 아내와 한창 질투심 많은 여섯 살 딸아이를 설득하기 위해서 말이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반려동물이 아이 정서에 좋다’는 말을 근거로 장장 2년에 걸쳐 설득 작업을 벌였습니다. 작년 봄, 지루한 줄다리기 협상 끝에 드디어 강아지를 데려왔습니다. 우린 살던 동네인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이름을 따서 ‘기동’이라 불렀습니다.
기동이는 무럭무럭 자라 30㎏이 넘는 듬직한 개가 됐습니다. 아직 의젓함까진 기대하기 힘듭니다. 한 살 배기 래브라도 리트리버답게 에너지 넘치는 청년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람을 좋아합니다. 산책하다 처음 본 사람도 따라갈 만큼 구김살 없이 밝은 개입니다. 하지만 이 ‘해피독’에게는 유일하게 데면데면한 사람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가장 아끼는 딸 이현이입니다.
둘의 관계가 이렇게 된 이유는 기동이가 오고 제가 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퇴근하면 꽁냥꽁냥 놀아주던 짝꿍 아빠가 하루에 두어 시간쯤 개랑 산책하러 나갑니다. 솜씨는 별로지만 늘 아침밥을 차려주며 ‘우렁각시’ 행세를 했던 저는 이제 딸 대신 개밥을 챙기고 있죠. 데려오고 몇 달간 제 머릿속에 온통 기동이만 있었으니, 제 딸에게 개는 아빠의 사랑을 빼앗아 간 얄미운 남동생 같은 존재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