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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못 뜨는 뉴욕, 마스크도 다시 썼다…캐나다 산불 일파만파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치 영화 속 화성 풍경을 보는 듯이 짙은 오렌지색으로 물든 하늘. 캐나다 전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연기가 국경을 넘어 미 동부 뉴욕을 급습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7일(현지시간) 오후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등은 형체를 간신히 알아볼 정도로 대기가 탁해졌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뉴욕시의 공기질지수(AQI)는 342까지 치솟아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최악의 공기질'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뉴욕주(州) 중부 시러큐스와 빙엄의 AQI는 한 때 400을 돌파했다. 최대 500까지 측정하는 AQI는 통상 100 이상이면 숨쉴 때 건강에 좋지 않고, 300 이상이면 '위험'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국 기상청(NWS)의 기상학자 마이크 하디먼은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마치 화성을 보는 것 같다"며 "대기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뉴욕의 하늘이 세기말을 다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누렇게 변해버린 건 지난달부터 캐나다 동부 퀘벡주(州)를 중심으로 발생한 산불이 수 백 곳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미국 동부까지 연기가 밀려온 탓이다.

캐나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연기가 미국까지 넘어와 하늘을 탁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이는 등 공기질을 악화시켰다. 뉴욕의 상징물인 '자유의 여신상'도 형체를 겨우 알아볼 정도다. 로이터=연합뉴스

캐나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연기가 미국까지 넘어와 하늘을 탁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이는 등 공기질을 악화시켰다. 뉴욕의 상징물인 '자유의 여신상'도 형체를 겨우 알아볼 정도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와 관련, 빌 블레어 캐나다 비상계획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캐나다 전역 414곳에서 여전히 산불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의 진압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특히 절반이 넘는 240여곳은 불길이 워낙 강해 소방 당국의 접근이 불가한 '통제불능' 지역으로 분류됐다.

캐나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연기가 미국까지 넘어와 하늘을 탁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이는 등 공기질을 악화시켰다. 뉴욕 거리의 시민들 중 일부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트위터 캡처

캐나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연기가 미국까지 넘어와 하늘을 탁한 오렌지색으로 물들이는 등 공기질을 악화시켰다. 뉴욕 거리의 시민들 중 일부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트위터 캡처

이로 인한 피해도 확산 일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피해가 가장 컸던 퀘벡주의 경우 최소 154건의 화재가 보고됐다. 지난달부터 캐나다 전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7일 기준 380만 헥타르(3만8000㎢)의 캐나다 국토가 소실됐다. 이는 남한 면적(약 10만㎢)의 3분의 1 이상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곳곳에서 도로·주택·고압 송전선 등이 파괴됐고, 주요 원유 생산지인 앨버타주의 석유·가스 생산도 타격을 입었다. 퀘벡주 주민 2만여명 등 캐나다 전역에서 12만명 이상이 긴급 대피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평상시 뉴욕(위) 하늘과 캐나다 산불 발생 이후 모습을 비교한 사진(아래). 트위터 캡처

평상시 뉴욕(위) 하늘과 캐나다 산불 발생 이후 모습을 비교한 사진(아래). 트위터 캡처

해마다 이맘 때쯤 캐나다에선 산불이 반복돼 왔지만, 유독 올해 피해가 컸던 건 평년보다 따뜻하고 건조한 봄 날씨 탓이다. 현지 소방 당국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날씨가 건조해지고 기온이 높아지면서 산불이 더 자주,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산불이 쉽게 잡히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캐나다 산림청 관계자는 "기후 변화로 캐나다에서 산불의 빈도·강도가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산불 시즌도 길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BBC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현재 같은 상태가 이번 여름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캐나다 산불 연기가 수 일째 뉴욕 등 미국 동부까지 퍼지자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이날 미국 인구의 3분의 1가량인 1억명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대기질 경보'를 발령했다. EPA는 AQI가 151 이상일 때 모든 사람의 건강에 안 좋은 수준으로 보고 경보를 발령한다.

뉴욕 거주자인 마크 스트라우스(58)는 WP에 "시내 하늘이 연기로 덮였던 마지막 기억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때"라고 말했다. 뉴욕 시민들 사이에선 "모래를 삼키는 것처럼 목구멍에 가래가 차고 눈이 화끈거린다"는 반응도 나왔다.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이날 "대기질 악화가 '비상사태' 수준"이라며 무료 마스크 100만장을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가시거리가 짧아진 탓에 라과디아 공항 등 뉴욕시 주변 공항에선 항공편이 일부 취소·지연되기도 했다. 현지 학교들은 소풍·체육 등 야외 활동을 제한했고 도서관·동물원 등은 급히 문을 닫았다.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의 조깅족도 사라졌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8일 경기는 취소됐고, 심지어 실내까지 스며든 연기 냄새 탓에 여자프로농구(WNBA) 뉴욕 리버티와 미네소타 링스의 7일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브로드웨이의 여러 공연도 취소됐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캐나다 산불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계속 받고 있다"며 "미국은 캐나다 산불 진화를 돕기 위해 600명 이상의 소방 인력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지난 5일(현지시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캠룹스의 주택지 뒤편에서 소방관이 물을 뿌리고 있다. 이들은 화재 진압과정에서 강한 바람이 많이 불어 어려움을 겪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캠룹스의 주택지 뒤편에서 소방관이 물을 뿌리고 있다. 이들은 화재 진압과정에서 강한 바람이 많이 불어 어려움을 겪었다. AP=연합뉴스

한편 미국 하와이주의 활화산인 킬라우에아 화산이 분화를 시작했다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7일 밝혔다. 이에 따라 화산관측소는 경계 수준을 '주의'에서 '경보'로, 항공 기상 코드를 '황색'에서 '적색'으로 높였다.

분화구는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내 폐쇄된 구역에 있어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지질조사국 측은 화산가스 영향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화산가스에 포함된 이산화황이 대기 중에서 '화산 스모그'를 형성해 인체·가축·농작물 등에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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