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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200명 "도둑" 이현세는 "도우미"…AI에 뒤숭숭한 웹툰업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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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2일부터 네이버웹툰 '도전만화'에는 'AI웹툰 보이콧' 게시물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다. 네이버 웹툰 캡처

지난 2일부터 네이버웹툰 '도전만화'에는 'AI웹툰 보이콧' 게시물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다. 네이버 웹툰 캡처

네이버웹툰 ‘도전만화’ 코너에는 지난 2일부터 ‘인공지능(AI) 웹툰 보이콧’이라는 제목의 만화 60여 편이 연이어 올라왔다. 웹툰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도둑질로 만든 AI웹툰을 반대한다”며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원고를 제작한 작가 A씨는 “AI 웹툰 사업화를 보며 많은 작가들이 걱정하고 속앓이하던 중, 한 작가님이 도전만화를 AI웹툰 반대 로고로 채우자는 제안을 했다. 외국의 한 일러스트 사이트가 AI 반대 로고로 채워진 걸 모델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보이콧에는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200여 명이 SNS 등을 통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생성형 AI가 빠른 속도로 산업계 전면에 등장하면서 웹툰 업계에도 이를 둘러싼 논쟁이 번지고 있다. 보이콧에 참가한 작가들은 우선 AI가 제작한 일러스트가 표절 시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AI는 수천만 장의 수집 데이터에서 입력된 태그와 일치하는 이미지를 찾아 합성하고 출력해줄 뿐이다. AI가 출력한 그림은 인터넷상 어딘가에 원작이 존재한다”는 게 A씨 등 작가들의 주장이다.

지난 2일 네이버웹툰 '도전만화' 코너에 올라온 'AI웹툰 보이콧'은 ″AI는 도둑″이라며 생성AI의 합성·재출력 결과와 기존 작품을 비교 제시했다. 네이버웹툰 캡처

지난 2일 네이버웹툰 '도전만화' 코너에 올라온 'AI웹툰 보이콧'은 ″AI는 도둑″이라며 생성AI의 합성·재출력 결과와 기존 작품을 비교 제시했다. 네이버웹툰 캡처

AI의 학습행위 자체도 논쟁거리가 됐다. “AI가 원작자 허락없이 무단 학습을 한다. 사실상의 도둑질”이라는 게 보이콧에 동의하는 작가들의 주장이다. 최근에는 “회원이 올리는 게시물을 네이버 서비스를 위한 연구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네이버웹툰 약관이 작가들 사이에서 재조명되면서, 투고작이 AI 학습 데이터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퍼졌다. 네이버 관계자는 “해당 약관은 통상적 내용으로 AI 학습을 목적으로 넣은 것은 아니다. 네이버웹툰은 도전만화 작품을 포함해 이번 공모전 출품작을 AI에 활용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불안감이 가라앉지 않자 네이버는 지난달 30일 “웹툰 공모전에서 AI 작업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AI를 둘러싼 논쟁은 다른 창작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지난 3월 ‘AI 대응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AI에 특정 가수의 목소리를 학습시켜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AI가 작곡한 곡이 발매되는 등 AI와 아티스트의 접점이 커진 데 따른 결과다. 미국작가조합은 지난달 2일(현지시간) 영화사·디즈니·넷플릭스 등을 상대로 파업을 시작하면서, 협상 조건 중 “AI가 대본을 쓸 수 없게 안전장치를 만들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반면에 AI가 생산성을 높여주고, 새로운 창작 영역을 열어줄 거라며 오히려 기대를 표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유미의 세포들’의 이동건 작가는 “종이 시절 박스 선 긋기나 말풍선 작업이 웹툰에서 간단한 공정이 된 것처럼, 채색도 간단한 작업으로 축소될 것 같다”고 했다. ‘제타’의 하지 작가는 “채색과 배경을 만족스럽게 해줄 완벽한 도우미 AI가 개발되면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절약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세 작가는 재담미디어와 함께 자신의 작품 4000여권을 AI에게 학습시켜, 사후(死後)에도 AI가 자신의 화풍에 따라 만화를 그릴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제도적 합의는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깝다. AI 학습을 저작권 침해로 볼 건지에 대한 해석이 대표적 사례다. 전재림 한국저작권위원회 전략기획팀 책임은 “AI는 원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기존 저작물을 복제하게 되는데, 복제권은 원작자에게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원작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AI의 학습이 거기에 해당되는지는 불명확해 법원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규명할 것인지, 저작권 침해의 주체를 AI로 볼지 AI서비스 업체로 볼지 등 현실적인 과제도 적지 않다.

국회에는 AI를 통한 산업촉진과 규제법안이 뒤섞여 계류돼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저작권법 전부개정을 추진하며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면책규정을 담겠다고 밝혔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I 제작 콘텐트를 명기하게 하는 콘텐트산업진흥법 일부개정안을 지난달 22일 대표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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