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16·광주체고), 김민선(13·광주체중), 김민주(11·치평초)는 자매 배구선수다. 한국인 아버지와 카자흐스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맏언니 민지에 이어 동생 민선과 민주가 차례로 배구에 입문하면서 어느새 '배구 세 자매'로 유명해졌다. 최근엔 다 같이 유명 패션지 화보도 찍었다. 지난 4일 광주 시내 한 공원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가 코트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집에서 나랑 같이 놀던 그 사람이 맞나 싶어 신기하다"며 까르르 웃었다.
맏언니 민지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18년 가장 먼저 배구를 시작했다. 좋은 '떡잎'을 찾으러 인근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던 치평초 배구부 감독과 코치의 눈에 띄었다. 민지는 "아빠는 사회인 야구를 하셨고, 엄마는 학창 시절 농구선수 생활을 해서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셨다. '배구를 해도 되겠냐'고 여쭤봤더니 흔쾌히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라'며 허락해 주셨다"고 했다.
둘째 민선은 언젠가부터 코트에 선 언니가 자꾸 부러웠다. "언니 따라 체육관에 갔다가 멋져 보여서 나도 배구공을 이리저리 만져보곤 했다. 언니 곁에서 배구 영상을 같이 보다가 재미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아버지가 "너도 배구 해볼래?"라고 물었다. 그렇게 두 딸이 배구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막내 민주와 배구의 만남은 불가항력이었다. 두 언니가 배구를 시작하면서 저녁 늦게까지 체육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초등학생 민주의 방과 후 돌봄 시간은 오후 6시면 끝났다. 민주는 언니와 함께 집에 가려고 체육관에 남았다가 자연스레 배구공을 잡았다. "처음엔 배구를 좋아해서 시작한 게 아닌데, 지금은 너무 재밌다"고 활짝 웃었다.
자매 셋이 같은 종목 선수로 뛰니 저절로 돈독해진다.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작은 일에도 함께 공감한다. 다만 서로의 부족한 면을 지적하다 가끔 다투는 일도 생긴다. 민지는 "서로 잘하는 점도 많이 얘기하지만,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면 왜 못하는지 지적해주게 된다. 그러다 아주 가끔 기뷴이 상할 때도 있다"며 "아무래도 집에서 배구 얘기만 주로 하게 되니 더 그렇다"고 웃어 보였다.
셋은 누가 뭐래도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맏언니 민지는 최근 동생들이 출전한 전국소년체육대회(소년체전)에 응원 차 다녀왔다. 둘째 민선의 중등부 경기를 보면서 "인정하긴 싫지만, 집에서 볼 때와 달리 조금 멋있어 보였다"고 털어놨다. 첫째 민지와 둘째 민선은 서브, 공격, 리시브 자세가 모두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민선은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코트에서 하는 행동이나 자기도 모르게 하는 습관들이 똑같을 때 신기하다"며 "언니 경기를 볼 때마다 '어, 내가 왜 저기 있지?' 싶다"며 웃었다.
아직 키(1m48㎝)가 작은 민주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두 언니는 만감이 교차하기도 한다. 지금의 민주 나이에 배구를 시작한 민지는 "열심히 하는데 잘 안 되는 모습을 보면 예전의 내가 떠올라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고 말했다. 민선은 "나 역시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하던 기억이 많이 났다. 정말 힘들 텐데 막내가 그런 걸 다 이겨내니까 대견했다"고 귀띔했다. 다만 "나도 언니들과 폼이 비슷한 것 같다"는 민주의 주장(?)에 두 언니는 "아직"이라며 장난스레 선을 그었다.
또래 여학생들과 달리, 자매는 K팝 아이돌 그룹에도 큰 관심이 없다. 민주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그룹으로 '아이브'를 꼽았을 뿐이다. 이들은 유튜브에서 재밌는 쇼츠 영상 대신 배구 하이라이트를 찾아보고, 아이돌 그룹 멤버 대신 배구선수 얘기로 꽃을 피운다. 민지는 포지션(리베로)이 같은 김연견(현대건설), 민선은 "못 받을 것 같은 공도 다 받아내는" 김해란(흥국생명), 민주는 "못하는 게 없고 팀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배구 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을 각각 롤 모델로 삼고 있다.
2021년 10월 광주를 연고로 하는 여자 프로배구단 페퍼저축은행이 창단한 것도 이들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막내 민주가 응원하는 흥국생명이 광주에 원정 경기를 왔던 날, 온 가족이 함께 배구장을 찾아 '직관'한 경험은 여전히 가장 즐거운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민지는 페퍼저축은행에서 볼 리트리버(경기 중 공을 관리하는 보조 요원)로 활약하기도 했다. 민지는 "가까운 데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직접 보면서 큰 공부가 됐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가 배구부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세 자매는 주말에만 '합체'한다. 민주는 "방을 독차지할 수 있어서 좋지만, 언니들이 집에 없으니 심심하다"고 짐짓 울상을 지었다. 대신 주말엔 부모와 함께 캠핑을 다니거나 평소 참아야 했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게 큰 기쁨이다.
차분한 민지, 온화한 민선, 똘똘한 민주. 세 자매는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매일 주변에 긍정의 기운을 전달하고 있다. 셋 다 훗날 프로배구 V리그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민지는 "기복 없는 선수", 민선은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선수", 민주는 "기분에 흔들리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막내까지 모두 프로 유니폼을 입는 그 날, 세 자매는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기념 사진 한 장을 남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