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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홍의 시선

위기의 한국 경제, 살 길은 과학기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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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한국 경제가 위태롭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는 전 분기보다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4분기 -0.3%로 역성장한 데 이은 저성장이다. 반도체 등의 수출이 맥을 못 추기 때문이다. 지난달 수출은 52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2% 줄며 8개월 연속 감소했다. 문제는 수출 주력 상품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경련 조사 결과 수출 상위 10대 품목 중 반도체 등 전자기기, 기계, 자동차, 선박 등 7개 품목의 수출 경쟁력이 지난 10년간 낮아졌다.

한국 경제를 뒷받침하던 중국 특수도 사라졌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에 중간재와 부품을 공급하며 중국 성장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런데 이제 중국 기술력이 높아져 가격 경쟁력이 있는 자국 제품을 사용하며 한국산 중간재·부품을 사지 않아도 되게 됐다. 그 결과 한국 수출의 30%를 차지하던 대중 수출이 12개월 연속 줄었다.

수출 품목 경쟁력 갈수록 낮아져
의대 쏠림에 미래먹거리도 타격
의대 정원 늘리고 이공계 우대를

성장 기반도 약화되고 있다. 올해 1분기 합계출생율은 0.78로 역대 최저 수준인 반면,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에 대한 고령(65세 이상) 인구 비중을 뜻하는 노년부양비는 26.1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이들이 먹여 살려야 하는 노년층은 급속히 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 경제 성장의 장기적인 리스크는 인구 통계학적 압력이 심화하는 것”이라며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5년 이후 약 2.0% 수준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2020년대 이후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성장세는 점차 둔화되고 205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0.5%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저출산·고령화는 한국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영욱 KDI 연구위원에 따르면 ‘자녀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1년 41.7%에서 2021년 30.3%로 10%포인트 이상 줄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실질소득은 1년 전보다 1.2% 증가한 반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실질소득은 1.5% 감소했다.

한국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성장 기반을 늘리는 게 급선무다. 먼저 저출생·고령화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 보육·교육정책을 개혁해 자녀를 낳아 키우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자녀를 낳아 키우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육아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또 사교육에 기대지 않고도 자녀 교육에 큰 문제가 없도록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부모들이 노후 대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자녀 사교육에 투자해야 하는 나라는 비정상이다. 지속가능한 고령화 사회를 위한 연금 개혁과 정년 연장, 이민 확대가 필요하다. 모두 저항이 만만치 않은 사안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필요한 개혁이다.

특히 성장 잠재력을 높이려면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 절실하다.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 등 미래먹거리 산업 경쟁력은 인재 양성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의대에 가려고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각하다. 한국의 미래산업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이공계 우대 정책과 함께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 부족을 해소하고 의사의 희소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중산층은 국가를 지탱하는 보루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사회는 양극화돼 극심한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다. 빈부 격차가 심한 중남미에서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가 엉망이 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국무회의에서 “두터운 중산층은 국가의 안전판”이라며 “정부는 활기찬 시장 정책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냄으로써 취약층이 중산층에 두텁게 편입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건 바람직한 방향이다.

취약층이 중산층으로 활발히 이동하려면 정치적·경제적 포용성이 커져야 한다. 정치적 포용성과 경제적 포용성은 서로 되먹임한다. 한국은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쟁취를 통해 정치적·경제적 포용성을 확대한 대표적 국가다. 선거에서 양대 정당이 과대 대표되고 군소 정당은 과소 대표되지 않도록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정치적 포용성을 확대하고, 지나치게 벌어진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남여 임금 격차를 줄여 경제적 포용성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