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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용후가 소리내다

"망하게 해줄까" 기업 겁박하는 정치…GDP, 대만에 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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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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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기업들을 죄인 취급하는 정치인들의 인식과 행태가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김주원 기자

돈 버는 기업들을 죄인 취급하는 정치인들의 인식과 행태가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김주원 기자

우리나라 정치에는 이상한 현상 하나가 있다. 정치가 기업을 대하는 태도다. 기업인 사이에서는 “우리가 죄인이냐”란 말이 오간다. 마치 돈 버는 것이 죄이고, 이익을 남기는 건 뻔뻔한 일처럼 여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선거철에 표를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공약을 살펴보면 기업이 맡아줘야 할 일이 꽤 많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일들이 한국 정치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

정치인들이 기업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요즘 플랫폼 기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카카오의 경우 정가에서는 “지난 정권의 혜택을 입은 기업”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면서 현 정부의 ‘밉상 기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난 문재인 정권 당시에도 여당(더불어민주당)은 카카오를 ‘골목상권을 침해한 기업’ ‘문어발 확장을 한 기업’ 등의 꼬리표를 붙여 격렬하게 공격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택시 호출 앱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자회사 가맹 택시인 '카카오T블루' 기사들에게 부당하게 승객 호출(콜)을 몰아줘 독과점 지위를 확대·강화했다며 과징금 257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택시 호출 앱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자회사 가맹 택시인 '카카오T블루' 기사들에게 부당하게 승객 호출(콜)을 몰아줘 독과점 지위를 확대·강화했다며 과징금 257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네이버는 어떠한가. “정부를 사칭한, 국민을 기만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것이나 다름없으며 권력에 취해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은 것이다.” 여당 고위 인사가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엄청난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이 말은 최근 네이버가 ‘마이카’ 서비스에서 자동차세 연납 신청 기간을 안내하며 마이카에서 제공하는 중고차 시세, 보유 차량 규격에 맞는 타이어 안내 등 광고성 정보를 띄운 문제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공적인 정보에 광고를 붙여 장사를 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광고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고, 공익정보가 무조건 고결한 것도 아니다. 광고도 보는 사람과의 연관성과 쓸모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과 달라도 정치인 말에 악덕 기업 돼 

예전에 한 정치인이 보좌관에게 “카카오 들어오라고 하세요”라고 보낸 메시지가 공개된 적 있다. “들어오라”는 표현에 정치인들이 기업을 백안시(白眼視)하는 인식이 극명하게 담겨있다. 그 의원이 왜 들어오라고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살펴보면 수긍이 가지 않는다. 상대 당의 원내대표 연설이 카카오가 운영하는 다음의 메인 화면에 떴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아가 “카카오 들어오라”고 했던 의원은 예전에 네이버의 대관을 책임졌던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국회에 불려들어갔던 사람이 입장이 바뀌니 반대의 행위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억울한 일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왜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할까. 정치인들이, 정부 관료가 무서워서다. 기업 관계자들이 정부 관계자나 정치인들과 대화를 하면 기업의 말을 그냥 귀 밖으로 듣거나 아예 무시한다는 현장의 하소연이 넘친다. “그건 알겠고요” “묻는 말에나 답하라”는 식으로 기업인들이 설명할 기회조차 빼앗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느 국회의원 보좌관은 기업 관계자에게 “잘 되게는 못해도, 망하게는 할 수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고 한다. 귀를 의심했다. 그렇게 힘에 의해 일방적으로 입이 닫힌 기업들의 의견보다는 일방적인 정치인, 정부 관료들의 말이 언론에 중점적으로 다뤄지면서 기업은 사실과 관계없이 사회적 죄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공통적 하소연이다.

기업 투자, 정치적 고려에 막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이렇게 기업을 죄인 취급하면서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얼마 전 대만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만의 성장 중심에 있는 회사는 TSMC다. 기업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해주는 파운드리 사업을 한다. 이 회사는 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리고 있다. 2023년 1분기 매출만 봐도 TSMC는 22조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4조~15조원으로 격차가 났다. 대만은 신규 투자를 하면 25%의 세액을 공제해 준다. 한국은 15%를 세액공제 해주자는 반도체법도 야당이 ‘대기업 특혜’라고 시비를 걸며 법의 통과가 늦어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이 위치한 경기도 평택 캠퍼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이 위치한 경기도 평택 캠퍼스. 사진 삼성전자

대만은 새로 공장을 지을 경우 3년이면 완공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7~8년 정도 걸린다. 공장을 짓는 물리적인 시간이 7~8년 걸리는 게 아니다. 이러 저러한 정치적 상황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공장 준공 기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에 첨단 공장을 지어 놓고도 이러 저러한 이유로 송전선을 연결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삼성전자가 TSMC를 이기는 게 더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도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결과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백악관이라는 노래방에서 150조원짜리 노래 한 곡하고 왔다”는 등 그저 다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만 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과 순방길에 올랐던 기업인들은 생각이 없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투자를 한 걸까. 기업인들은 그들을 비난하는 정치인들보다 경제적인 득실을 계산 못 해서 바보 같은 판단을 한 것일까. 만약 당신이 투자자라면 공장 하나 짓는데 7~8년 걸리는 곳과 3년이면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 곳 가운데 어느 곳에 투자하고 싶은가.

기업의 잘못은 법으로 다루되 겁박하지 말아야  

이제 관점을 바꿀 때다. 기업인들을 죄인 취급하고, 겁박해서 무엇이 바뀌는가. 규제를 만들고 그들에게 호통을 치면서 무엇을 바꾸려 하는가.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그들 머릿속에 그려지는지 묻고 싶다. 이제는 정치와 관료가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때다. 기업인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상식적 눈높이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엄중하게 바로 잡으면 된다. 그저 비난하고, 윽박지르고, 권력의 힘으로 누르기만 해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다.

박용후 관점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