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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전쟁 선방해온 한국…세 가지 변수에 발목잡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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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국이 주요국에 비해 빠르게 고물가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부진 심화 우려에도 물가 방어를 위해 단행한 선제적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하긴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근원 물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산유국의 감산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세 둔화,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 등의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을 발표한 35개 회원국 중 한국의 물가 상승률(3.7%)은 5번째로 낮았다. 한국보다 물가 상승률이 낮은 국가는 유일하게 2%대를 기록한 스위스(2.57%)를 비롯해 그리스(3.04%), 일본(3.5%), 룩셈부르크(3.69%)뿐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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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회원국의 물가 상승률은 모두 4%를 넘었다. 35개국 평균 물가 상승률은 7.37%를 기록했다. 주요 20개국(G20) 물가 상승률 평균도 6.5%에 이른다.

한국 물가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는 건 다른 국가보다 빨리 기준금리를 올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한국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미국(2022년 3월)보다 7개월 빨랐다.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 영향 관련 5월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은 통화 긴축 기조를 주요국보다 반년 정도 일찍 시작했다”며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역성장 이후 경기 둔화 압력이 커지고 물가 오름세는 3~4%대로 낮아지면서 우리 경제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성장이 둔화한 대신 물가 오름세는 비교적 빠르게 꺾였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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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물가 상승세 둔화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예금은행 대출 잔액 기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기업은 약 75%, 기업은 약 65%에 이른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25일 고정금리 대출 확대 방안을 논의하면서 “과도한 변동금리 대출은 금리 상승기 소비 위축 등의 리스크로 작용한다”라고 평가했는데, 소비 위축은 대체로 물가 둔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2%)를 상회하는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 물가 상승률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3월 4.2%에서 4월 3.7%, 5월 3.3%로 완연한 하락세다. 하지만 근원물가(식료품·에너지 제외) 상승률은 3월과 4월 4%에 이어 5월 3.9%로 변동이 거의 없었다.

이런 흐름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서비스물가 등의 상승세가 아직 높아 근원 물가는 상대적으로 완만히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6.9%), 기타 상품·서비스(6.4%), 가정용품·가사서비스(6%)의 물가 상승률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또 외부 활동 늘어나면서 지난달 의류·신발 물가가 1년 전보다 8% 올라 31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다른 물가 상승 압박 요인도 여전하다.

더딘 근원 물가 안정세는 소비자물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중반까지 뚜렷한 둔화 흐름이 이어지면서 2%대로 낮아질 가능성이 있으나 이후 다시 높아져 등락하다가 연말쯤에는 3% 내외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생산 추가 감산 여파,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 등의 변수도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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