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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 악몽의 그날…가시면류관 구한 무명 영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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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의 화재 진압 장면. 대성당 첨탑 등이 붕괴하는 주요 장면은 실물을 본뜬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사진 찬란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의 화재 진압 장면. 대성당 첨탑 등이 붕괴하는 주요 장면은 실물을 본뜬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사진 찬란

“영화를 찍으면서 화재 사건 뒤의 혼란상을 알게 됐죠.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이 정도로 허술하게 보호가 안 되고 있었다는 데 놀랐습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건을 다룬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의 장 자크 아노(79) 감독은 “가시면류관 같은 유물 1300여점이 손실 없이 구조됐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오는 29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달 말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실제 삶이 상상한 이야기보다 더 기이하다. 더 비극적이고 웃긴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 영화도 비극이지만, 슬랩스틱 코미디를 가미했다”고 했다.

‘불을 찾아서’(1981), ‘연인’(1992) 등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는 수도원 의문사를 다룬 ‘장미의 이름’(1986), 달라이 라마를 그린 ‘티벳에서의 7년’(1997) 등 종교 소재 영화도 만들어왔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2019년 4월 15일 발생했다. 그해 12월 영화사 파테에 당시 자료 내용을 넘겨받은 그는 하룻밤 만에 연출을 결심했다.

현장을 지휘하는 장 자크 아노 감독. 대형 불길 장면은 연기와 열기로 인해 40초 안에 여러대 카메라를 놓고 촬영하기도 했다. 사진 찬란

현장을 지휘하는 장 자크 아노 감독. 대형 불길 장면은 연기와 열기로 인해 40초 안에 여러대 카메라를 놓고 촬영하기도 했다. 사진 찬란

“믿기 어려운 실화였죠. 픽션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있었어요. 주인공은 세계적 스타 노트르담 대성당이고, 상대는 위협적이고 무시무시한 악마 ‘불’이죠. 평범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대성당을 구하려 해요. 각본가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한편의 오페라였습니다.”

이번 영화엔 총 4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중심축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구하려 10시간 동안 화마에 맞선 무명의 영웅들이다. 특히 1400℃ 가까운 고온에 노출됐던 소방관들에 초점을 맞췄다. 700℃까지 견디게 만들어진 방화복 안은 압력밥솥처럼 된 상태였단다. 지붕에서 녹아내린 납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국가적 대재난을 불과 4년 만에 극영화로 담은 사례는 드물다. 촬영부터 난항이었다. 실제 노트르담 대성당 테라스와 앞쪽 광장에서 납 노출 위험에 대비한 보호복을 입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촬영하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한마디로 상태가 끔찍했어요. 동시대에 지어진 비슷한 양식의 성당들(상스·생드니·아미앵·부르주 등)을 찾아 촬영했죠. 불이 붙고 천장이 무너지는 장면은 실물을 본뜬 세트를 지어 카메라 12대를 놓고 찍었어요. 성직자들도 어느 게 진짜인지 헷갈리더군요.”

사고 당일 촬영된 실제 영상이 포함됐다. 마크롱 대통령도 출연하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줘야 했다. 전체 영화(110분)의 4%가 실제 영상이다. TV 방영분, 일반인 촬영본을 3만5000여개 제보받아 골라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개인적 친분이 있어서 그날 촬영된 영상의 사용 허가를 받았다. 대역 배우 뒷모습과 연결해 기술적으로 합쳤다. 사건이 실감날 수 있도록 얼굴이 알려진 배우는 피해 캐스팅했다.”

영화엔 대성당의 화재 감시 경보가 울렸는데도 관계자나 소방당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일 처음 출근한 담당자가 화재 지점을 오판한 데다, 평소 시스템 오작동이 잦았기 때문이다. 대성당 보수작업을 하는 일꾼들은 금연 수칙을 무시하고 담배를 피운다. 먼지 쌓인 전선은 비둘기 등에 노출돼 있다.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나 별도 이야기는 없지만 이런 위태로운 상황들이 긴장감을 주며 허술한 관리 시스템에 대한 경각심이 강조된다.

아직 규명되지 않은 화재 원인을 어떻게 해석하고 영화를 만들었나.
“영화를 만들며 소방관, 성직자, 시민 목격자 등을 350여명을 인터뷰했다. 경찰이 5년째 수사 중인데 담배꽁초에서 시작됐다는 게 유력하다. 워낙 오래된 건축물이고 대부분 대성당이 아주 더럽다. 일꾼들은 담배를 많이 피운다. 100% 증거는 없지만, 의도적 방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 사건의 영화화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일단 관객이 재밌게 봐줬으면 하고 서스펜스를 가득 담았다. 한편으론 중국·이탈리아·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도 오래된 목재 건축물이 취약한 상태로 방치돼있다. 오늘날 인류가 위대한 문화유산을 누리는 건 특권인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는 한국의 남대문 화재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나 역시 소식을 들었다. 가슴 아픈 일”이라며 영화 주제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영화를 만들고 명예 소방관에 임명됐는데 세계 어디 가나 같은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죠. 구조도, 불을 끄는 것도 이미 너무 늦어요. 최초의 오작동, 작은 불씨 같은 문제를 막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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