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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검정 넥타이' 이국종…그가 발길 못뗀 어느 영웅의 묘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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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6일 제68주년 현충일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46용사 합동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6일 제68주년 현충일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46용사 합동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올해는 영령들이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국종 국방부 의무자문관은 6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자문관은 이날 오전 중앙일보 김성태 프리랜서(사진기자)가 대전 현충원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포착됐다.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맸다. 매년 해군 정복을 입고 현충원을 찾았는데, 올해는 어머니와 함께 온다고 양복을 입었다고 한다.

이 자문관은 참배를 마치고 이동 중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이 자문관은 2015년 부친이 현충원으로 이장하면서 9년째 현충일에 찾는다.

이 자문관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 육군 1군단 직할대대 통신병으로 근무할 때 대북한 작전을 수행하던 중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 상처를 입었다. 2000년 작고했고 2015년 현충원으로 옮겼다.

이 자문관은 이날 모친과 함께 아버지 묘역을 참배한 뒤 천안함46 용사 묘역, 연평포격·연평해전 전사자 묘역, 천안함 구호작전 중 사망한 한주호 준위 묘역을 참배했다. 이들의 유족도 이 자문관 부친 묘역을 참배했다고 한다. 이 자문관은 “해군은 가족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이 자문관은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참배객이 적어 썰렁했는데, 올해는 많았다. 영령들이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고 좋았다. 영령들이 많이 반가워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6일 제68주년 현충일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고 한주호 준위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6일 제68주년 현충일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고 한주호 준위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 자문관은 고(故) 한주호 준위를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참배한 이유는 “한 준위는 해군의 전설이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한 준위와 이 자문관은 ‘아덴만 사다리’로 연결된다.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때 청해부대와 해군 특수전여단(UDT)이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할 때 UDT 대원들이 삼호주얼리호로 타고 올라간 사다리가 한 준위 작품이라고 한다. 기존 사다리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이 자문관도 아덴만 여명 작전에 참여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납치한 삼호주얼리호를 아덴만 해상에서 구출한 작전을 말한다.

이날 참배 때 이 자문관을 가슴 아프게 한 사람이 해군 수병이다. 6년 전 황도현함에 승선한 수병이 작전 수행 중 큰 부상을 입었는데, 이 자문관이 수술하고 치료하던 중 8개월 여 만에 전사했다고 한다. 이 자문관은 그 수병 묘역 앞에서 오래 멈췄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수병의 어머니를 만났다. 오랜만이었다. 어머니는 그간 상황을 털어놨다. 외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한국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미국·일본 등지를 다녔다고 한다. 이 자문관은 “한국을 오래 떠나있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한국에 있는 게 너무 힘들다’는 수병 어머니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고 말했다.

해군 수병이 승선했던 고속정은 해군 2함대 소속 황도현함이다. 제2 연평해전 때 전사한 고 황도현 중사를 기려 명명한 함정이다. 이날 대전 현충원을 찾은 황도현 중사의 부모가 해군 수병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수병 어머니를 위로했다고 한다. 이 자문관의 말.

“천안함이나 연평 관련 전사자 부모들은 그나마 시간이 다소 흘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지만 해군 수병은 전사한 지 6년밖에 안 돼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합니다. 연평포격·연평해전 전사자 유족들이 ‘건강하셔야 아드님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눈을 감는다’고 위로하더군요. 피해자인 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습니다.”

이날 대전 현충원에는 북한군의 연평 포격 때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 여사, 고 문광욱 일병의 부모, 제2 연평해전 전사자 고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 씨 등이 찾았다. 김오복 여사는 해군 수병의 묘비를 쓰다듬었고, 문광욱 일병의 부모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단다.

이 자문관은 “유족들이 ‘국립묘지나 전몰장병을 두고 6.25 전쟁 같은 옛날 일처럼 여긴다. 하지만 한 쪽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있기에 지금의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더라”고 전했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맨 왼쪽)가 지난해 9월 제주 남방 해상에서 해상 조난자 탐색구조훈련에 참여해 조난자를 응급처치한 뒤 감압챔버로 옮기고 있다. 이 교수는 국방부 의무자문관이다. 연합뉴스

이국종 아주대 교수(맨 왼쪽)가 지난해 9월 제주 남방 해상에서 해상 조난자 탐색구조훈련에 참여해 조난자를 응급처치한 뒤 감압챔버로 옮기고 있다. 이 교수는 국방부 의무자문관이다. 연합뉴스

이 자문관은 명예 해군 중령이다. 해군과 다름없다. 2020년 초 아주대에서 해군으로 파견돼 해군과 함께 일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군 의료 및 군진의학 관련 국방부 의무자문관을 맡았다. 올 4월에는 해군작전사령부, 즉 해작사 ‘Navy Sea GHOST 발전위원’에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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