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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어 교과서에도 실렸다...국내 유일 '호국 4형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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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호국영웅 4형제를 기리는 충효정에 걸린 사진. 사진 왼쪽부터 고(故) 이재양·류분기 부부, 장남 이민건 육군 하사, 차남 이태건 육군 상병, 삼남 이영건 육군 상병, 막내 이승건 해병 중사다. 사진 울산시

울산 호국영웅 4형제를 기리는 충효정에 걸린 사진. 사진 왼쪽부터 고(故) 이재양·류분기 부부, 장남 이민건 육군 하사, 차남 이태건 육군 상병, 삼남 이영건 육군 상병, 막내 이승건 해병 중사다. 사진 울산시

현충일인 6일 오전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충효정. 울산 호국영웅 ‘4형제’의 숭고한 희생정신 기리고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엔 어림잡아 400여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6·25 전쟁, 월남전에서 전사한 4형제  

4형제는 고(故) 이재양·류분기 부부의 여섯 자녀 가운데 장남 이민건 육군 하사와 차남 이태건 육군 상병, 삼남 이영건 육군 상병, 막내 이승건 해병 중사다. 장남·차남·삼남은 6·25 전쟁에, 막내는 월남전에 각각 참전했다가 산화했다. 일가(一家) 형제 네 명이 조국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례는 국내에선 유일하다는 게 국가보훈부의 설명이다.

국가유공 4형제를 기리는 충효정. 사진 울산시

국가유공 4형제를 기리는 충효정. 사진 울산시


4형제는 울산시 남구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가 발발하자 그해 8월 장남과 차남, 삼남은 육군에 함께 입대했다. 당시 28살, 25살, 22살 꽃 같은 나이였다. 하지만 장남인 이민건 하사는 입대 이듬해 7월 금화지구전투에서 전사했다. 차남 이태건 상병이 철원지구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지 4개월 만이다. 동반 입대한 삼남 이영건 상병마저 전사자로 기록됐다. 금쪽같은 아들 세 명을 모두 잃은 아버지 이재양씨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다 1959년 세상을 떠났다.

4형제 생전 모습. 사진 왼쪽부터 장남 이민건 육군 하사, 차남 이태건 육군 상병, 삼남 이영건 육군 상병, 막내 이승건 해병 중사. 사진 국가보훈부 블로그 캡쳐

4형제 생전 모습. 사진 왼쪽부터 장남 이민건 육군 하사, 차남 이태건 육군 상병, 삼남 이영건 육군 상병, 막내 이승건 해병 중사. 사진 국가보훈부 블로그 캡쳐

막내 이승건 해병 중사는 형들의 순국으로 병역의무를 지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이 중사는 1964년 3월 “우리 형님들 셋이나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다”면서 해병에 자원입대했다. 4형제의 운명은 기구했다. 청룡부대에 배속된 이 중사는 베트남 꽝나이지구 전투 도중 전사했다. 6·25 전쟁에서 장남과 차남, 삼남을 잃은 데 이어 다시 막내아들까지 전쟁터에서 희생되자 어머니 류분기씨는 쓰러졌다. 류씨는 다시 일어서지 못한 채 먼저 떠난 자식과 남편 곁으로 갔다.

충효정 생기고, 지역 교과서에도 소개 

4형제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처음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5년 6월 17일 추모사업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007년 울산시와 울주군은 이들 4형제를 위한 충효정을 건립했고, 2016년엔 창작 뮤지컬로도 만들어 무대 위에 올렸다. 울주군 선바위에서 충효정 진입로까지는 ‘호국 4형제로’란 이름의 도로도 생겼다. 울산지역 학교에서 쓰이는 교과서에 4형제 이야기가 실렸고, 군부대 신병 교육자료로도 활용되기에 이른다.

이날 추모제 현장에서 국방부는 ‘내 고장 영웅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장남인 이민건 하사의 자녀 이준길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6·25 전쟁 당시 미처 전하지 못한 호국영웅의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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