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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내걸던 기념일은 옛말? "나라 어지러운데 의미없다"[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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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인 6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아파트 베란다 밖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김준희 기자

현충일인 6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아파트 베란다 밖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김준희 기자

전주·대전 아파트·주택가 태극기 드물어 

현충일인 6일 오전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총 9개 동, 800여 세대가 사는 이 아파트에서 태극기를 단 가구는 10여 곳에 불과했다. 회사원 김모(45·전주 효자동)씨는 “국가 기념일데도 태극기 달기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집집이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은 옛날얘기”라고 말했다.

근처 전북도청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북지역본부 등 관공서를 제외하곤 태극기를 단 곳은 드물었다. 주택가에서도 국가 기념일이 무색할 정도로 태극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같은 시각 대전 유성구 한 아파트 단지도 사정은 비슷했다. 수백 세대 중 태극기를 단 집은 5곳 안팎이었다.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르면 현충일을 비롯한 3·1절·제헌절·광복절·국군의날·개천절·한글날 등 국경일과 기념일로 지정된 날엔 태극기를 게양해야 한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국경일·기념일을 앞두고 정부와 자치단체 등에서 태극기 달기 운동을 독려해도 ‘공염불’에 그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현충일인 6일 오전 대전 유성구 한 아파트 단지에 태극기가 듬성듬성 걸려 있다. [사진 독자]

현충일인 6일 오전 대전 유성구 한 아파트 단지에 태극기가 듬성듬성 걸려 있다. [사진 독자]

“나라 어지러운데 태극기 무슨 의미”

최민호 세종시장은 지난 5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나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많은 시민이 태극기 달기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안내와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현충일은 1950년 한국 전쟁 등에서 조국을 위해 희생한 장병 등 호국 영령의 뜻을 기리는 날이다. 정부가 1956년 4월 기념일로 지정한 뒤 올해 68회째를 맞았다. 현충일엔 깃봉에서 깃면 너비만큼 내려 다는 조기(弔旗)를 게양한다.

올해 현충일에 태극기가 실종된 배경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주요 현안마다 여야로 나뉘어 대립하는 정치권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모(76·전주 송천동)씨는 “매년 국경일·기념일마다 태극기를 걸었는데 이번엔 생각도 안 났다”며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잘못해 나라가 어지러운 판에 태극기를 다는 게 무슨 의미냐. 애국자가 따로 있냐”고 했다.

6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아파트에 태극기 4개가량이 걸려 있다. 김준희 기자

6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한 아파트에 태극기 4개가량이 걸려 있다. 김준희 기자

“태극기 게양은 국가에 '감사함' 표현하는 것”

전쟁과 거리가 먼 젊은 세대에겐 ‘국경일·기념일은 평일에 하루 덤으로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회사원 김모(35·전주 중화산동)씨는 “태극기만 달면 애국자가 되는 거냐”라며 “나라를 사랑하고 위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태극기 게양 여부로 애국심을 따지는 건 고리타분한 고정 관념”이라고 했다.

향토사학자인 이인철(96) 체육발전연구원장은 “오늘날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건 6·25(전쟁) 등 위기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현충일에 태극기를 다는 건 순국선열과 국가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태극기를 달지 않는 풍토에 대해선 “정치가 이렇게 만들어놨다”며 “특정 세력끼리 권력을 잡기 위해 싸우다 보니 국가라는 의미는 희석되고 정치 패러다임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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