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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노동으로 챗GPT 키워놨더니, 1만달러 일감 뺏기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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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정보기술(IT)산업에 강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대졸자가 많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어 에세이 등을 대신 써주는 '아카데믹 라이팅' 아르바이트가 활발한 나라가 있다. 인구 5500만명의 아프리카 케냐다. 아프리카 언어인 스와힐리어 외에도 영어가 공용어인 덕분에 케냐에는 '과제물 대필업자'들이 봇물을 이뤘다. 최상급 대필업자의 경우 월 200만 케냐 실링(1만4524달러), 우리 돈 약 1800만원까지 벌 수 있다. 이들에게 일을 맡기는 페이스북 페이지 그룹에는 17만명 이상이 가입돼 전 세계 학생들의 요청이 몰린다.

그런데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챗GPT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로이터통신과 비즈니스 인사이더, 타임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현재의 챗GPT를 완성하는 데 케냐인들이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를 키우는 데 영어가 비교적 능통한 케냐인들의 '단순노동' 공이 컸다. 사진은 2022년 케냐 나이로비의 한 초등학교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초등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를 키우는 데 영어가 비교적 능통한 케냐인들의 '단순노동' 공이 컸다. 사진은 2022년 케냐 나이로비의 한 초등학교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초등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챗GPT 개발사인 오픈 AI는 2021년 개발과정에서 챗GPT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영어가 가능한 케냐 노동자들을 시간당 1.32~2달러(약 1700~2600원)로 외주 고용했다. 이들이 수행한 작업은 수만 개의 말뭉치에 '데이터 라벨링(AI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가공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분류한 말뭉치를 챗GPT가 학습해 차별·혐오 발언, 성적 학대 관련 단어 등을 걸러낼 수 있게 했다.

케냐인들은 자칫 트라우마도 유발할 수 있는 콘텐트를 하루 9시간 이상 여과 없이 접하면서 챗GPT 개발에 일조했다. 애널리스틱 드리프트 홈페이지 캡처

케냐인들은 자칫 트라우마도 유발할 수 있는 콘텐트를 하루 9시간 이상 여과 없이 접하면서 챗GPT 개발에 일조했다. 애널리스틱 드리프트 홈페이지 캡처

케냐인들은 이 같은 콘텐트를 하루 9시간 이상 여과 없이 접하면서 챗GPT 개발에 일조했다. 이 과정에서 살인, 아동 성학대 등 폭력적인 콘텐트를 접한 일부 노동자들이 불면증·우울증·공황장애에 시달렸다고 타임지가 전했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 창업자는 이를 두고 "챗GPT를 위해 케냐인들이 'AI 기니피그(쥐과의 실험동물)'가 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성장한 챗GPT가 역설적으로 케냐 대필산업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온라인 학습 사이트인 스터디닷컴이 올해 1월 학생 1000명을 조사한 데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과제를 할 때 챗GPT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53%는 에세이를 작성할 때, 48%는 집에서 시험을 보거나 문제를 풀 때 활용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케냐 대필업자들도 "올 초 이후로 일감이 현격하게 줄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 AI는 2021년 개발과정에서 챗GPT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영어가 가능한 케냐 노동자들을 시간당 1.32~2달러(약 1700원~약 2600원)로 외주 고용했다. 타임 홈페이지 캡처

챗GPT 개발사인 오픈 AI는 2021년 개발과정에서 챗GPT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영어가 가능한 케냐 노동자들을 시간당 1.32~2달러(약 1700원~약 2600원)로 외주 고용했다. 타임 홈페이지 캡처

반면에 아직은 챗GPT 글쓰기가 인간을 뛰어넘는 경쟁력을 갖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3명의 케냐 대필업자를 쓴 적 있는 미국 대학생 헤럴드는 로이터통신에 “챗GPT를 써보니 그렇게 지적이지 못해 좋은 교수라면 콘텐트가 독창적인지 알아챌 것”이라며 “그래서 아프리카 대필작가에게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케냐 키바비대학 IT 강사인 딕슨 게콤베도 로이터통신에 "(챗GPT 등) AI가 쓴 글과 인간이 쓴 글은 분명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대필은 15~24세 청년 실업률이 13.35%에 이르는 케냐에선 포기할 수 없는 고소득 알바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통계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로라는 해외 대학생들에게 의뢰받은 영어 과제물 대필로 한 달에 3000~7000달러(약 392만원~약 916만원)를 벌고 있다. 그는 로이터통신에 "직장인보다 대필업자가 낫다"면서 "지금 버는 수준으로 월급 줄 기업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위스콘신주(州)에 사는 대학생 헤럴드는 지난 2년간 케냐 대필업자에 1100달러(약 143만원)를 내고 에세이 4편 작성을 맡겼다. 페이스북 캡처

미국 위스콘신주(州)에 사는 대학생 헤럴드는 지난 2년간 케냐 대필업자에 1100달러(약 143만원)를 내고 에세이 4편 작성을 맡겼다.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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