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시락 들고 무인점포 턴다…경찰 "500원 내가 주고싶은 심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시내 한 무인점포의 모습.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연합뉴스]

서울시내 한 무인점포의 모습.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무인점포에서 성인 남성이 음료수 등 식료품 2만 원가량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과 카드 결제 기록 등을 확인해 범인을 특정했다. 가게 주인은 이 남성에게 30배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해당 사건을 맡은 경찰은 “재산 범죄에서는 피해를 온전히 보상받는 게 가장 중요한데, 보상을 넘어서 30배 배상은 과하다고 생각했다”며 “공권력을 동원해 범인을 잡았는데 오히려 가게 주인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비춰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근 일선 경찰서는 급증하는 무인점포 관련 신고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서울 시내에 약 3600개의 무인점포가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무인점포 체인점들은 5~6평짜리 임대료를 제외하고 2000~3000만원 정도 초기 투자금만 있으면 창업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데, 코로나19 유행 당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며 급증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 중이다. 이에 따라 무인점포 절도 신고건(경찰 집계) 역시 2021년 3월 223건 수준에서 지난해 1월 480건, 6월에는 539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무인점포 절도 장면. 인터넷 캡처

무인점포 절도 장면. 인터넷 캡처

 서울의 한 경찰서 형사과 소속 경찰은 “살인 사건이나 500원짜리 도난 사건이나 똑같이 최선을 다하겠지만, 일이 몰릴 때면 가끔은 그냥 내가 500원을 주고 사건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경찰 관은 “만원짜리 도난 사건을 접수한 주인에게 범인 동선을 추적한 CCTV 영상을 담당 형사와 함께 찾아보도록 제안한 적이 있다. 업주가 2시간 정도 보고 나서 지친 나머지 사건 접수를 취소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경찰 내부망에도 “누가 냉동고 문을 열고 갔다며 경찰 보고 닫아달라는 신고도 한다” 등 무인점포와 관련한 불만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소액절도가 잦은 무인점포 신고가 급증하면서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취지의 불만이 주된 내용이다.

서울 시내 한 무인아이스크림 매장에서 매장 영업주가 경찰 신고를 통해 검찰에 실제로 절도죄로 송치된 사건을 붙여 놓았다. 신혜연 기자.

서울 시내 한 무인아이스크림 매장에서 매장 영업주가 경찰 신고를 통해 검찰에 실제로 절도죄로 송치된 사건을 붙여 놓았다. 신혜연 기자.

 무인점포 점주들 역시 이런 논란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선 신고가 불가피하단 입장이다. 서울 논현동에서 1년 반째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을 운영 중인 A씨는 “보통은 훔쳐가는 사람들이 습관처럼 계속해서 절도를 저지른다”며 “CCTV 사각지대로 숨거나 도시락통을 가지고 와서 감쪽같이 숨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개당 100원 정도 이익이 남는 박리다매 업종인 탓에 물건 하나만 도난당해도 5~6개에 해당하는 이익금을 손해보는 만큼, 금전적으로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점주들의 설명이다.

최대 100배까지 보상해야 한다는 경고를 적은 한 무인점포 경고문. 신혜연 기자.

최대 100배까지 보상해야 한다는 경고를 적은 한 무인점포 경고문. 신혜연 기자.

스스로 자구책을 찾는 점포들도 적지 않다. 서울 중랑구에서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을 운영 중인 손모(25)씨는 “개업 초반에는 거의 매일 CCTV를 들여다보면서 경고방송을 하고 동네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친분을 쌓았다”며 “손님들에게 ‘관리 잘하는 매장’이라고 인지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절대 그냥 방치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매장에서는 절도시 피해액의 100배를 배상해야 한다는 경고문을 붙이기도 한다. 5일 찾은 한 무인점포에서도 “결제 안한 분들 증거영상이 있다. 한 번 신고 뒤 즉시 신고 조치”라는 문구와 함께 100배 배상을 요구하겠다는 경고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경찰도 “행정력 낭비”라는 조직 내부 불만을 감안해 검거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인터넷진흥원과 협업해 7월 이후 관내 무인점포 120여개를 대상으로 보안장치 설비를 검토 중이다. 보안장치는 모바일 개인인증을 통해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설치에 약 400만원 가량이 소요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영등포 관내에서 올해 연말까지 시범 사업을 운영해보고 효과에 따라 확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