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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마다 드라이버 헤드 바꾼다…‘장타 괴물’ 정찬민

중앙일보

입력

드라이버를 들고 포즈를 취한 정찬민. 그의 샤프트는 구부리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서 다른 사람의 클럽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 CJ]

드라이버를 들고 포즈를 취한 정찬민. 그의 샤프트는 구부리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서 다른 사람의 클럽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 CJ]

삼국지의 장비가 투구 대신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악수를 해보니 손은 솥뚜껑이었다. 지난달 30일 만난 한국 최고, 어쩌면 세계 최고의 골프 장타자 정찬민(24) 이야기다.

그의 드라이버를 들어봤더니 샤프트가 쇳덩이처럼 단단했다. 정찬민의 샤프트는 텐세이 오렌지 8TX다. 한국에는 딱 하나밖에 없는 가장 강한 샤프트라고 한다. 정찬민은 그 샤프트도 너무 약하단다. 그는 “조금 더 강한 게 필요한데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미국의 ‘헐크’ 브라이슨 디섐보도 “내 스윙 속도에 맞는 드라이버를 구할 수가 없다”고 불평했는데 정찬민도 비슷한 상황이다.

샤프트는 애지중지하지만, 드라이버 헤드는 2주에 한 번 정도 바꾼다. 공을 많이 치지도 않는다. 하루에 연습 10번, 경기 중 10번 정도 친다. 2주면 150개 남짓이다. 그런데도 헤드 속도가 워낙 빠르니 페이스가 움푹 들어가거나 접합부가 터진다.

정찬민의 아버지 정원채씨는 43세 때 아들을 봤다. 정찬민은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운동을 하려면 덩치가 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조건을 걸고 골프를 허락했다.

정찬민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유를 매일 1L 넘게, 점심에는 치즈가 든 피자를 한 판씩 먹었다. 줄넘기도 하루 2000개씩 했다. 정씨는 “줄넘기는 운동이라기보다 성장판 자극용이었다. 그랬더니 3년 새 30㎝가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 정찬민은 키 1m88㎝에 몸무게 120㎏의 당당한 사나이가 됐다.

정씨는 또 스윙이 아니라 거리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맘껏 휘두르는 법을 터득한 뒤에야 스윙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정찬민은 장비가 장팔사모 휘두르듯 드라이버를 휘갈기는 법을 깨우쳤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또 성적에 신경 쓰지 말고 골프를 즐기라고 했다. 정찬민은 중학교 3학년까지 실컷 놀았다. 공도 많이 치지 않았다. 칩샷을 포함해 공을 친 게 하루 150개를 넘지 않았다. 그래서 정찬민은 아직도 허리와 어깨·무릎이 싱싱한 편이다.

정찬민은 “샷 거리는 나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중학교 때 이미 400m 넘게 날린 적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샷 거리에서는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찬민의 스윙 스피드는 최고 시속 136마일이나 된다. 볼 스피드는 206마일까지 낸 적이 있다. 디섐보의 볼 스피드 최고 기록은 202마일, 토니 피나우는 203마일 정도다.

장타는 축복이지만 저주가 될 수도 있다. 한국처럼 OB가 많은 곳에서는 그렇다. 정찬민은 샷 거리가 너무 길어 고생했다. ‘정찬민=거리’이니 거리를 포기할 수 없는데 드라이버를 들면 OB라는 감옥이 그를 옥죈다. 정찬민은 “국내 코스의 경우 똑바로 친 것 같은데도 살짝살짝 OB 라인을 벗어난 경우가 많았다. 한국 코스와는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GS칼텍스 매경 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정찬민은 8월부터는 아시안투어와 인터내셔널 시리즈에 나간다. 9월엔 콘페리 투어(미국 PGA 2부 투어) Q스쿨을 위해 미국으로 간다. 정찬민은 “미국에서 경기할 때면 드라이버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괴물’ 정찬민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불과 한 달에 불과하다. 이 괴물은 이제 바다를 건너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를 직접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정찬민은…

● 생년월일: 1999년 8월 27일
● 출신교: 상암초-오상중-오상고-연세대
● 체격: 1m88㎝, 120㎏
● 별명: 한국의 존 람
● 주요 경력: 2016년 일송배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 2016~2017년 송암배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 2023년 GS칼텍스 매경오픈 우승
● 최고 헤드스피드 시속: 136마일

골프 인사이드(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07)

인생을 골프에 비유합니다. 골프엔 수많은 이야기가 응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한 라운드에서 골퍼는 희망, 욕심, 집착, 좌절, 분노, 질투, 카타르시스 등을 경험합니다. 골프 인사이드는 불완전한 게임을 하는 완벽하지 못한 골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면에 싣지 못한 ‘골프 인사이드(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07)’ 연재 기사를 The Joongang Plus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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