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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원유 100만 배럴 추가감산…국내물가 경고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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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량을 또 줄인다.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한 국제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이번 조치로 국제유가 하락세가 멈출 수 있어, 하반기 물가 관리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4일(현지시간)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는 정례 장관급 회의를 가진 후 “사우디가 다음 달부터 하루 100만 배럴 원유 생산량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이번 감산 조치는 다음 달 시행하지만, 언제 종료할지는 못 박지 않았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추가 감산은 연장될 수 있다”면서 “석유 시장 안정과 균형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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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사우디를 제외한 다른 산유국이 추가 감산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목표 원유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산유국의 반발이 컸다. 하지만 사우디가 하루 100만 배럴을 줄이기로 하면서, 극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사우디가 시장 점유율을 잃으면서 국제유가 방어를 위해 사실상 혼자 총대를 멘 셈이다. 압둘아지즈 빈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사우디의 감산을 “(유가 상승을 위한) 사우디의 ‘막대사탕’”이라고 했다.

사우디 총대 멨지만…“다른 산유국 동조 안해 충격 제한적”

5일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추가 감산 소식이 전해지면서 하락하던 국내 유류 가격에 변수가 생겼다. 지난 4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들이 차량에 주유하고 있다. [뉴스1]

5일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추가 감산 소식이 전해지면서 하락하던 국내 유류 가격에 변수가 생겼다. 지난 4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들이 차량에 주유하고 있다. [뉴스1]

7월부터 사우디 석유 생산량은 하루 약 900만 배럴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1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러시아와 다른 산유국은 추가 감산 없이 기존 감산량을 유지한다. 다만 감산 기한은 올해 말에서 내년 말로 늘려 잡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OPEC+ 주요 산유국이 생산량 조절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하루 200만 배럴의 대규모 감산 안을 내놨다. 올해 들어서는 하루 166만 배럴의 생산을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생산량 조절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그만큼 국제유가 전망이 좋지 않아서다. 미국이 지난해부터 전략비축유를 대량 방출하고 있는 데다 기대했던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도 쉽사리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달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8을 기록해 시장 예상치(49.7)를 밑돌았다. 고금리 정책이 지속하면서 하반기 경기 침체가 더 심해질 것이란 전망도 국제유가 하락을 불렀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지난달에만 11.32% 하락하면서 지난해 9월 이후 월간 기준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번 감산 결정이 지난해 같은 급격한 국제유가 상승을 이끌지는 아직 미지수다. 세계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만큼 빠르지 않은 데다 사우디를 빼면 추가 감산에 동참할 수 있는 산유국도 없어서다. 되레 UAE는 내년부터 하루 20만 배럴 증산키로 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 앞서 있었던 두 차례의 감산 조치 후에 국제유가는 단기적으로는 올랐지만, 이후 다시 배럴당 7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이날 감산 조치 후에도 국제유가가 장중 한때 전 거래일 대비 3~4%가량 급등했지만, 상승분을 다시 반납하며 1%대 상승에 그쳤다. 김광래 삼성선물 수석연구원은 “사우디가 단독으로 자발적 추가 감산을 결정했지만, 7월에 한정되고 다른 국가의 동조가 없었던 만큼 (OPEC+의) 감산 의지가 상당히 약해졌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만 국제유가가 지금보다 더 떨어지기는 힘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 싱크탱크 ‘에너지 애스펙츠’ 공동설립자인 암리타센은 “이번 결정은 유가의 바닥을 설정하고 지키겠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진단했다. 특히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중심으로 네옴시티 등 탈석유 정책을 펼치고 있는 사우디는 자금 확보를 위해 국제유가를 어느 정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는 최고 실권자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경제적으로 받칠 수 있는 수준으로 유가를 유지해야 한다”며 “사우디 정부는 유가를 배럴당 81달러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유가 추가 하락이 제한되면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하반기 물가 관리도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유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쉽사리 내려가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물가 하락을 이끌었던 국제유가 하락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하반기 물가가 다시 재상승한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기준금리 추가 인상 압박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앞으로 유가의 향방을 결정할 변수는 러시아가 유가 방어에 얼마나 협조할지 여부다. WSJ는 “러시아가 엄청난 양의 값싼 원유를 시장에 계속 공급하면서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려는 사우디의 노력을 무디게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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