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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골짜기 세대’라고 했어…김은중의 아이들, 쾌속 4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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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석현이 U-20 월드컵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 연장 전반 5분 결승골을 터뜨린 뒤 포효하고 있다.

최석현이 U-20 월드컵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 연장 전반 5분 결승골을 터뜨린 뒤 포효하고 있다.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대회에서 무패 행진(3승2무)으로 4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5일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8강전에서 연장전 끝에 최석현(단국대)의 결승골로 나이지리아에 1-0으로 승리했다. 2년 주기인 이 대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1년 인도네시아 대회가 취소돼 4년 만에 열렸다. 한국은 직전인 2019년 폴란드 대회에 이어 2회 연속으로 4강에 올랐다. 한국이 FIFA 주관 대회에서 2회 연속 4강에 오른 건 처음이다.

전·후반을 0-0으로 마친 두 팀은 연장전에 들어갔다. 이날 결승골이자 유일한 골이 연장 전반 5분에 터졌다. 한국이 코너킥 기회를 얻었다. 키커 이승원(강원)이 왼쪽 코너에서 올려준 공을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최석현이 머리로 방향을 틀어 상대 골문 안으로 보냈다. 나이지리아가 한국 장신(1m92㎝) 공격수 이영준(김천)에 집중한 사이 점프력 좋은 최석현이 감각적으로 공간을 활용했다.

대학선수 최석현, 투지로 단점 극복

골이 들어간 순간 환호하는 김은중 감독(오른쪽 둘째)과 선수들. [연합뉴스]

골이 들어간 순간 환호하는 김은중 감독(오른쪽 둘째)과 선수들. [연합뉴스]

최석현은 중앙 수비수로는 키(1m78㎝)가 작다. 이 포지션에는 1m80㎝ 중후반대 선수가 즐비하다. 그런데도 이번 대회에서 헤딩으로만 2골을 터뜨렸다. 앞서 에콰도르와의 16강전(한국 3-2 승)에서도 결승골을 뽑았다. 최석현은 특히 이번 한국 U-20 대표선수 가운데 골키퍼 김정훈(고려대)과 함께 두 명뿐인 대학팀 소속이다. 프로보다 경험 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김은중 한국 U-20 대표팀 감독은 민첩성·투지·축구 감각 등 최석현의 장점을 높이 샀다. 체격·경험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기대대로 빠른 발과 점프력으로 이겨냈다. 연속 결승골로 김 감독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이탈리아의 파비오 칸나바로(1m76㎝)나 스페인의 카를레스 푸욜(1m78㎝)처럼, 작지만 강한 세계적 센터백의 탄생을 기대하게 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석현은 “(이)승원이가 잘 올려줘 머리로 손쉽게 받아 넣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공을 동료에게 돌렸다.

2003~2004년생이 주축인 이번 U-20 대표팀은 이승우(수원FC), 백승호(전북), 이강인(마요르카) 등이 뛴 과거 대표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소속팀의 주전급 선수도 거의 없다. 일각에서는 그런 이번 U-20 대표팀을 ‘골짜기 세대’ ‘낀 세대’로 불렀다. 아래로 푹 파이고 사이에 끼여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 가운데 이뤄낸 4강 진출이다 보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은중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결국 눈물을 보였다. “두 팀 모두 조심스러운 경기를 했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에 어려웠다”고 말문을 연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에게 고맙다”며 눈물을 삼켰다. 이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주자고 주문했다”며 “선수들이 잘 버텨준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왼쪽 눈 시력 잃은 김은중, 지도자로 우뚝

김 감독은 중학 시절 공에 맞아 다친 눈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실명 수준까지 왼쪽 눈 시력을 잃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놀라운 득점력을 뽐내 ‘샤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프로 무대에선 골잡이로 이름을 날렸지만, 대표팀 특히 A팀에서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선수 시절 아쉬웠던 태극마크를 지도자로서 단 김 감독은 ‘골짜기 세대’ 제자들을 단숨에 산 정상이 보이는 8부 능선까지 밀어올렸다.

한국은 결승 진출을 놓고 오는 9일 오전 6시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스타디움에서 이탈리아와 격돌한다. 이탈리아는 8강전에서 콜롬비아를 3-1로 꺾고 3회 연속으로 4강에 올랐다.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을 3-2로 꺾었지만, 한국의 8강전 상대였던 나이지리아에는 0-2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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