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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자충수 된 '이래경 혁신위'…친명vs비명 뇌관 건드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낙점한 ‘이래경 혁신위원장’ 카드가 당내 비이재명계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계파 간 갈등으로 격화할 조짐을 보인다.

이 대표는 5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에서  “민주당 혁신기구를 맡아서 이끌 책임자로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명예이사장을 모시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혁신기구가 마련한 혁신안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며 ‘전권 위임’도 시사했다. 지난달 14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당 쇄신을 이끌 혁신기구를 만들기로 결의한 지 약 3주 만이다. 그간 혁신위원장 인선에 어려움을 겪다 외부에서 추천을 받은 이 이사장을 내정하고 전날 밤 다른 지도부에 ‘이래경 혁신위’를 띄우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날 오전 발표 직후 이 이사장의 ‘천안함 자폭설’ 등 과거 SNS상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이사장은 지난 2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하여 남북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라고 적었다. 미국이 천안함 사건을 조작했다는 음모론과 같은 주장이었다. 그는 2020년 3월엔 “코로나 19의 진원지가 미국임을 가리키는 정황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일관된 반미(反美) 감정도 드러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당의 혁신 기구를 맡아서 이끌 책임자로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명예이사장을 모시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민주당 혁신기구 위원장으로 선임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제공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당의 혁신 기구를 맡아서 이끌 책임자로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명예이사장을 모시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민주당 혁신기구 위원장으로 선임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제공

당장 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내정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명계 4선 중진인 홍영표 의원은 ‘이래경 혁신위’ 발표 두시간여 만에 페이스북에 이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올렸다. 그는 “이래경 이사장은 이미 언론에 노출된 정보만으로도 혁신위원장은커녕 민주당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라며 “더 큰 논란이 발생하기 전에 이 이사장 내정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적었다.

이 이사장이 그간 이 대표를 강하게 옹호해 온 친이재명계 인사라는 점도 비명계 반발을 키우는 요소다. 이 이사장은 2019년 경기지사였던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무죄를 탄원했던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대선에선 이 대표 지지 선언에 동참했다.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대표 쪽에 기울어 있는 분이라니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겠다”며 “황당무계하고 참 걱정된다”고 썼다.

이 대표 입장에선 이 이사장이 김근태계(GT) 인사로 분류되는 만큼 비명계를 달랠 수 있는 회심의 카드였지만, 과거 발언 논란으로 내정 철회 요구까지 직면하면서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당초 친명계에서는 이 이사장이 ㈜호이트한국 대표이사를 지낸 기업인 출신이면서 이 대표가 주장해 온 ‘기본소득론’의 지지자라, 당 이미지 제고와 이 대표 체제의 안정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으나 이 역시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이 대표는 이날 이 이사장의 ‘천안함 사건 조작설’ 발언에 대해 “그 점까지 저희가 정확한 내용을 몰랐던 것 같다”며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래경 사단법인 '바른백년' 이사장이 5일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이 이사장 페이스북 캡처

이래경 사단법인 '바른백년' 이사장이 5일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이 이사장 페이스북 캡처

다만 비명계의 내정 철회 요구에도 친명계는 ‘이래경 혁신위’를 강행하겠다는 기류다. 지도부에 속한 한 친명계 의원은 “지금의 논란들은 앞으로 이 이사장이 어떻게 칼을 휘두르느냐에 따라 달렸다”며 “그 정도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혁신위를 끌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명계 의원은 “시민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운 편이고 기업활동도 오래 했지만, 문제가 없었던 분으로 알고 있다”고 옹호했다. 권칠승 당 수석대변인도 “사인으로 있을 때 개인적인 소신을 강하게 말씀하셨는데, 공인으로서 혁신기구 활동이 시작되면 그렇게 말씀을 하시겠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 인선에 반발하는 일부 비명계 의원들은 이르면 오는 7일 혁신기구와 관련한 긴급 의원총회 개최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이 같은 요구는 이 대표와 당 지도부가 참석한 5일 오후 당 고위전략회의에서도 보고됐다. 회의에선 이 이사장의 ‘천안함 발언’을 두고 해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이 대표는 듣기만 했다고 한다. 권칠승 당 수석대변인은 회의 직후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의 반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천안함 함장은 무슨 낯짝으로 그렇게 얘기한 거냐. 부하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고 말해, 국민의힘으로부터 “이게 무슨 망발이냐”(김용태 전 최고위원)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국민의힘은 종일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고작 이런 문제 인물에게 제1야당의 미래를 맡기겠다고 3주 가까이나 시간을 끌었던 것인가”라며 “장고 끝 악수”라고 지적했다. 권성동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이사장은) 반지성적 음모론자이자 외골수의 반미주의자”라며 “최악의 인사를 의도적으로 고르고 골라도 저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차라리 김어준 씨를 선임하는 것이 낫다”고 비꼬았고, 유승민 전 의원도 “민주당은 스스로 망하길 작정한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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